대우건설이 시공권을 포기한 울산 일산동 푸르지오주상복합 조감도
여름만 아는 애송이들에게 겨울이 닥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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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우건설이 브릿지론 440억을 대신 물어주고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시공권을 포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분양시장이 고꾸라지면서 미분양 가능성이 커지자 착공 전에 미리 손을 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업장의 시행사는 토지 매입과 인허가 비용 등을 위해 브릿지론으로 1000억원을 조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후순위분 440억에 대해 대우건설이 지급보증을 제공했었죠. 하지만 대우건설은 440억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고, 시공권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대주단과 시행사에 통보하였습니다. 금리와 공사비 인상, 시장 침체로 사업을 지속하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철수를 결정한 것이죠.
일단 시행사는 공사를 해 줄 다른 건설사를 찾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의 저자인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배문성 애널리스트가 지난 2월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코리아모니터의 '페북세상'코너에 옮겨싣습니다. (편집자주)
Moonsung Bae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크레딧애널리스트>
“너희들은 아직 어리고, 여름이라는 계절만 아는 애송이들이다. 그러니 이제 겨울이 닥치면 파리처럼 픽픽 쓰러지겠지” 긴 여름 다음에는 항상 긴 겨울이 오는 법이라며, 그들은 앞으로 닥쳐 올 추위를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 조지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a song of ice and fire), 왕좌의 게임 제1부> 중에서
# 혹한기에는 스펙도 소용없다
흔히 부동산PF 사업장을 분석할 때 선순위 & 낮은 LTV & 상위 시공사 결합은 안정성을 돋보이게 하는 스펙이다. 수도권/지방 구분? 경기/인천이 초토화되는 마당에 비서울 지역을 두고 굳이 수도권과 지방을 차별할 만한 명분도 안보인다.
“광역시, 주거용 부동산, 시공사는 TOP 5 브랜드, LTV 46%”
이정도 조건이면 제2금융권의 PF 사업장 중에서는 못해도 상위 30% 이내에 든다고 판단된다. 제2금융권 부동산 PF는 비주거용 부동산, 다양한 시공사, 중후순위(LTV 90%)로 대변되니 금번 사업장이 PROFILE만 보면 얼마나 좋은 사업장인지 짐작케 한다.
어쩔수 없이 ‘라떼’를 꺼내들자면… 나이/대학간판/학점 및 토익점수는 취업을 가르는 스펙으로 취급되었었다. 기업들의 ‘구인 수요’가 일정하다면 대략 맞는 얘기다. 대체로 저 기준에서 서류전형이 갈렸으니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고성장 시기에는 위의 3가지가 웬만큼 후달려도 금융권 취업이 수월한 편이었다. 증권사들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지향하며 IB/리서치 인력 채용에 열을 올렸고, 은행들도 수백명씩 뽑아댔었다.
헌데 2008년들어 리만이 파산하자 모든 채용의 문은 닫혀버렸고, 위에 언급한 스펙이 좋다한들 금융권 취업은 넘사벽이 되고 말았다. 채용 자체를 안하는데 학점과 토익이 높은들 무슨 수로 뚫는단 말인가?
지금과 같은 부동산 경기에서 PF의 안정성을 수도권/주거용/선순위 여부로 따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유효하지 않은 상황이다.
# 탈출은 지능순, 똘똘한 자가 먼저 내린다.
이 남자가 결혼을 해도 될 남자인지를 파악하려면 고생에 처하는 상황에 몰아넣고 어찌 반응하는지 살펴보라는, 아주 고약하게 전해지는 민간요법이 있다. 힘들 때 본성이 드러나듯, 진짜 실력차도 힘들 때 드러난다. 해병대의 근성을 쳐주듯 고생이란건 찐하게 겪어보지 않으면 체화되기 어렵다.
건설사는 주택경기의 부침을 숱하게 겪어본 선수다. 특히나 대우건설쯤 되는 회사면 UDT(인간병기)라 할수 있다. 비즈니스에서 자발적으로 UDT가 되려는 자는 없다. 비자발적으로 당할 뿐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과정에서 여럿 죽어나고 살아남은 자는 어쩌다보니 UDT가 된 것이다.
제2금융권이 부동산PF 시장에 진입한 시기는 2013년 이후이기에 짧은 역사는 호시절로 채워졌다. 베테랑이 없는 건 아니지만 파이가 커지면서 급증한 인력수요는 나이 어린 사람을 선호하는 고약한 문화와 함께 훈련병들로 채워졌다.
경험이 부족한자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잘못은, 위기상황을 측정하는 감각이 없다보니 ‘기다리기’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UDT들은 알고 있다. 기다리면 X질 것이 보이기 때문에 여기서 손가락 자르고 간다는 판단을 할수 있다. “여차하면 좋아질수도 있는데 손가락 아까워서 어떡해유?”는 역시 애송이들이 하는 말이다. UDT가 겪어본 바에 따르면 440억원을 아까워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대우건설보다 한~~참 규모가 작은 이수건설 하나 때문에 이수그룹은 5천억이 넘는 돈을 날려야 했다. 웅진그룹을 날린 것도,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그룹을 이렇게 만든 것도 주택사업이다.
[단독]대우건설 보증 브리지론 디폴트(아시아경제, 2023.2.7)
"브리지론을 본 PF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공사가 관행적으로 제공해왔던 책임준공 약정을 제공하거나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략)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대형 건설사가 도급 계약을 맺은 후에 책임준공을 하지 않는 것은 업계 관행상 상당히 희귀한 사례라고 말했다."
물들어오는 호시절에는 모두가 한 방향으로 노를 젓는다. 그런 호시절의 "관행"을 운운하는 것은 애송이들이 하는 말이다. 물들어오는 날은 기약없으니 사공은 저마다 생각이 많아졌다. 물론 경험이 미숙한 사공은 뭘 해야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기 십상이고, 경험많은 사공이 먼저 움직이는 법이다. 그는 440억원 정도는 포기하고 내릴테니 이제 V(Value)가 얼마인지 모르는 땅을 가지고 자네들 알아서 하시게나 하고 떠났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노력은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라서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 윤하 <사건의 지평선> 중
(사족) 물론 UDT가 훈련병보다 무조건 옳은결정을 하는건 아니라는게 시장의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