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공부할 결심
대체 누가 미치광이 크레딧 애널리스트의 책을 사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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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성 Moonsung Bae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애널리스트
# 짙어지는 조정, 깊어지는 관망 - 헤어질 결심
"사랑하는 데는 결심이 필요하지 않지만, 헤어지는 데는 결심이 필요하다."
시작과 끝, 저마다 난이도가 다르겠지만 대체로 시작보다 끝의 난이도가 훨씬 높지 않을까요? 이는 자산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대부분 매수보다 매도가 훨씬 어렵습니다.
미련..... 뭔가 아닌것 같지만, 이만한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미련이 헤어질 결심을 방해합니다. 혹여 내가 팔았는데 바로 오르면 어쩌나? 설마 더한 바닥이 있으랴? 하는 미련은 독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자산시장의 진정한 고수는 맺고 끊음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정이 많고 여릴수록 그러질 못하기에, 기관은 로스컷 이라는 가혹한 장치도 마련합니다. (로스컷 규정: 정신차려! 니가 샀던건 높은 확률로 쓰레기이고 당분간 가망이 없다!)
대체로 미련은 합리적 근거가 약합니다. "정"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헤어질 결심이란 곧 미련을 최소화하기 위해 냉철하게 분석/판단을 해보자는 의미와도 통합니다. 사야할때 사지 않은 자, 사고 또 사다가 일격을 당하는 자 등등
기나긴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부자의 숫자가 제한적인건 성공과 실패를 나란히 반복해온 아픔의 기록일지 모릅니다.
# 채권대학살은 어떻게 부동산 대학살의 전조가 될까?
저는 돌고 돌아 채권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신용평가사에서 곧바로 채권시장에 진입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은행시스템을 생생하게 겪어봤기에 후회는 없습니다.(그런데 왜 눈물이.. 먼산)
과거 건설업종 담당 애널리스트 시절엔 다른 보고서들을 참조하며 성장하다보니, 저 또한 공급과 정부정책에 기민하게 휘둘렸습니다.
헌데 실제로 아파트를 사고 팔아보면서, 공급지표나 정부정책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이는 가격의 움직임이 당혹스러웠습니다.
2013년에 위례에 아파트를 살땐 부동산 전문가로부터 "거기 앞으로 공급 엄청나오는데, 그런델 지금 왜 사!?"라는 타박을 듣기도 했습니다.
"원인과 결과"는 경험으로 체득해야 내재화되는데, 원인과 결과간에 시차가 길수록 그 상관관계를 짚어내기 어렵습니다. 가령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암과 같은 중병의 경우 단 며칠, 몇주 사이에 생성되고 악화되는게 아니라 수년 전부터 그 인자가 심어지고 심화되면서 발병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심각한 일일수록 근본원인은 좀더 과거의 무언가가 장기간 심화되는데서 터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금리를 대차게 내리고 대략 1년반이 지난 뒤 인플레가 발병했듯, '금리를 올렸는데 왜 인플레가 안잡혀?'라며 당장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이를 틀렸다고 하면 넌센스입니다. '부채가 자꾸만 늘어나면 언젠가 터진다' 이런게 서브프라임을 겪은 미국처럼 직접 몸서리치게 겪어보지 않으면 체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외환보유고가 적으면 큰일난다'는 트라우마가 워낙 강력하기에, USD는 많을수록 좋다는건 제대로 익혔습니다. 아마 안겪어봤다면 '뭐하러 USD를 그리 많이 가져가느냐?'라는 비난의 소리가 가끔씩 흘러나왔을겁니다. 외환시장과 거리가 먼 일반인들도, IMF 트라우마 덕분에 보수적인 외화운용의 소중함을 아는 것입니다.
채권시장과 가까울수록 금리의 위력을 실감하고, 멀수록 금리의 위력을 과소평가 하게 됩니다. 가계부채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기에 경고도 뒷전이었습니다. 래리 서머스는 채권시장 스트레스를 세계 경제의 지진을 앞둔 '미진(tremor)'에 비유했습니다. 이 간단한 비유를 두고 저는 중언부언해대며 썼네요.
한국은행이 2021년 8월부터 금리를 올리자, 세종, 대구 등등 약한 고리부터 터졌습니다. 금리인상이 거기서 그쳤다면 집값 하락도 국지적인 이슈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 폭의 금리상승은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높이 오르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10여년전 스페인의 경로를 밟을 가능성'마저 우려될 정도니까요. 가계부채가 증가해도 지표들이 건전했다? 요즘들어 한창 이슈인 PF ABCP는 건설사와 증권사 재무상태표(book)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급격한 금리인하가 시차를 두고 안전하고 좋은자산 부터 위험하고 나쁜자산까지 가격을 올렸듯, 급격한 금리인상은 시차를 두고 위험하고 나쁜자산부터 안전하고 좋은자산까지 가격을 붕괴시킵니다.
채권시장에서 겪은 일이 대략 반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부동산 시장에서 펼쳐지는 양상입니다. 금리상승으로 고생하던 채권시장은 급기야 조달 자체가 안되는 유동성 문제에 직면하였습니다. 이렇게 내년 부동산 시장을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합니다.
채권매니저들이 '밀리면 사자' 전략으로 내내 행복했던 기간은 부동산 투자에도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아 물론.. 줄창 금리 하나로 부동산 가격 변화를 설명하려드는 것은 무모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너무나 오랜기간 '내려가는 금리', '저금리' 환경에 익숙했기에, 그 고마움과 중요성을 지나치게 간과해온듯 합니다. 잊어왔던 근본을 이 책과 함께 상기할 수 있다면....
# 대체 누가 미치광이 크레딧 애널리스트의 책을 사볼 것인가?
인플레와 금리인상, '드디어 올게 왔다는 생각'에서 '생각없이' 올해 2~3월에 페북에 썼던 "아파트시장에서 경험한 인플레 오마쥬 혹은 데자뷰" 시리즈가 코리아모니터 김수헌 대표님의 눈에 들게 되었고, 그 인연이 출간으로 이어졌습니다.(a Special Thanks to 김수헌 대표님) 4, 5, 6월에 걸쳐 완성했던 원고는 미치광이가 쓴 테가 날 정도로 저급했는데, 두어달 어바웃어북 이원범 대표님의 에디팅을 거치니 출간물의 품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역대급 상승장이 지속된만큼 벼락거지가 된 무주택자들을 비웃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공급절벽, 전월세가 폭등, 신고가 갱신 등을 다루며 무주택자로 남아있으면 큰일난다는 식의 기사를 보도했지요. 하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갈수록 분위기가 급반전하자 실거래가 급락 사례, 대출금리 급등, 역전세난 등에 초점을 맞춰 이젠 영끌족과 다주택자가 큰일났다는 기사로 난무합니다. 결국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통해 단편적인 부동산 정보들을 접하다보면 그때그때 조롱의 대상이 달라지고 이들을 비웃는 댓글들이 난무하기 일쑤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비웃음과 조롱을 넘어 제대로 교훈을 체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설을 읽는 것을 권유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부동산가격 변화의 '서사'를 "공급-금리-유동성-타이밍"의 "기-승-전-결"로 엮은 일종의 서사적 구성을 따랐습니다. 다만, 익히 아는 내용은 스킵하거나 흥미로운 소주제만 따로 읽어도 부담이 없도록 편집의 묘를 살렸습니다.
부동산시장의 상승기 초입에 주식 애널리스트들이 진입하여 시장과의 소통을 풍요롭게 이뤘듯이, 변곡점이라 판단되는 지금 이 순간,
리스크 분석 중심의 경력을 쌓은 필자(크래딧 애널리스트)도 이 책을 소통의 창구로 활용하여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부디 이 책이 부동산시장의 거대한 변곡점에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모두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