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채는 만기가 길기 때문에 발행회사가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럴까요?
대우조선해양이 공적자금 2조3000억원에 대한 이자를 한 푼도 안 갚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죠.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한 만기 30년짜리 전환사채(CB)를 수출입은행이 인수했었는데, 지금까지 발생한 이자 1192억원을 내지 않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보도 되었던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기사는 이 CB의 만기가 30년으로 길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은 회계상 자본이 아니라 부채로 분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만기가 길기만 하면 채무(부채)도 얼마든지 자본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읽힙니다.
영구채는 만기가 길기 때문에 자본?
대우조선 영구채, 만기가 길어서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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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에 수은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대출금 1조원을, 그리고 '17년에는 대출금 1조3000억원을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하는 CB로 대체합니다.
2조3000억원에 이르는 대출금을 없애는 대신 대우조선해양이 새로 발행하는 2조3000억원의 CB를 수은이 인수한 겁니다. 대출금을 CB로 전환한 것이므로 대우조선해양에 새로 투입된 자금은 없었습니다.
이 CB는 만기 30년짜리 였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은 만기연장권을 가졌습니다. 수은은 대우조선해양의 주가가 오르면 CB를 주식으로 전환하여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CB 원금에 대해 상환을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30년 만기가 되면 대우조선해양은 스스로 판단에 따라 만기를 연장할 수 있습니다. 연장권 행사 횟수에 제한도 없습니다. 이처럼 발행사가 현금결제 의무를 지지 않기 때문에 이 CB는 자본으로 분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CB를 흔히 영구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물론 영구채는 CB가 아니라 일반 회사채 형식으로 발행되기도 합니다.
영구채를 공식적으로는 신종자본증권이라고 부릅니다. 대우조선해양의 2017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재무제표 자본항목에 '신종자본증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구채(영구CB)입니다.
<대우조선해양 2017년 연결재무제표 재무상태표 '자본', 단위:억원>
단순히 만기가 길다고 해서 부채를 자본으로 분류할 수는 없습니다. 만기가 몇년이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30년이면 길고 20년이면 짧은 건가요?
채권 발행사가 상환의무를 지고 있다면 아무리 만기가 길어도 그것은 부채입니다. 영구채는 발행사가 보유한 만기연장권 때문에 사실상 만기가 없죠. 그래서 주식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채권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발행회사는 영구히 이자만 내고 원금 상환은 미룰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발행 이후 대개 3년~5년이 되는 시점에 금리가 올라가는 스텝업 조항이 영구채 발행조건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스텝업은 한번으로 그치는 게 아닙니다. 1차 스텝업 이후 2, 3차 스텝업이 도래하면서 몇차례 금리가 더 튑니다.
예를 들어 최초발행금리는 2% 였는데, 발행 후 3년이 되는 시점부터는 금리가 5%로 오르고, 그 뒤 2년마다 금리가 0.25%포인트씩 올라가는 식입니다. 스텝업 조건은 다양합니다.
스텝업 시점이 도래하면 발행회사에게는 조기상환(콜옵션 행사)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대부분 영구채 발행기업은 3~5년 뒤 최초 스텝업 시기가 오면 조기상환을 합니다. 금리 부담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말이 영구채이지, 실질은 3~5년 만기 일반 회사채나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내년에 금리 스텝업 시점이 도래합니다. 연간 이자부담이 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회사 상황으로 이 정도의 이자를 감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콜옵션을 행사하여 원리금을 조기상환하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수은이 지금까지 이자납부를 유예해준 것처럼 스텝업 금리 적용시점도 조정해 줄 것이라는 전망들이 있습니다만, 아직 공식입장이 나온 것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