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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뻘소리'를 내었는가

  • Korea Monitor
  • 2022-06-27 15:29
  • (글로벌모니터 김수헌 기자)
정제마진 급등에 따른 정유사 영업이익은 단순한 '회계상의 이익'이 아니며 재고평가이익도 아니다.

정제마진 급등에 따른 정유사 영업이익은 단순한 '회계상의 이익'이 아니며 재고평가이익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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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소리:허튼 소리의 호남 사투리)

정치권에서 정유사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많이 내자 고통분담을 강요하는 거죠. 횡재세를 매기겠다느니, 초과이익을 환수하겠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유사들은 "과거 유가 하락기에 몇 천억원, 몇 조원 적자를 볼 때는 손실을 보전해 줬느냐"며 반발하는 분위기 입니다. 이 와중에 정유사의 영업이익에 대한 기가막힌 헛소리들이 신문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1.
정유사의 현재 영업이익이 "회계상 이익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회계상 이익" 또는 "회계상 손실" 이라는 이야기는 어떨 때 하는 걸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회사 보유 토지가 장부(재무제표)에 100만원으로 잡혀있습니다. 10년 전 매입한 이래 장부가격을 그대로 유지해 왔습니다. 회사가 토지를 재평가하였더니 현 시세가 1000만원입니다. 회사는 장부가격을 1000만원으로 수정했습니다. 증가한 900만원은 재평가이익이죠.

그러나 그 차익이 현금으로 유입될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회계상의 이익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토지를 처분한다면 처분대금이 통으로 유입되겠죠.

회사 기계장치 가격이 장부(재무제표)에 1000만원으로 잡혀 있습니다. 이 기계장치의 자산가치를 평가해야 할 일이 생겨 측정해보니 100만원 밖에 안됩니다. 기계장치(자산)의 장부가격을 10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수정합니다. 그리고 손익계산서에 900만원만큼 자산손상 비용을 반영합니다. 회사에서 현금이 유출될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회계상의 손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
지난해 3분기 이후 정유사의 정제마진이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휘발유, 경유 등) 판매가격과 '원유 도입가격+정제설비 가동비용+일부 물류비' 간의 차액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원유를 도입정제하여 판매하는 과정에서 얻는 마진인 거죠. 배럴당 정제마진은 4달러 정도가 정유사들의 손익분기점이라고 하는데요.
정제마진 추이

정제마진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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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 복합정제마진 기준으로 6월 세째주 정제마진은 24달러 정도입니다. 4달러가 손익분기점인데 6배가 되네요. 지난해 3분기부터 정제마진은 손익분기 마진을 넘어섰죠. 최근 추이를 보면 5월 3주 18.9달러, 6월 첫주 22.9 달러 입니다. 한마디로 고공행진입니다.

이렇게 정제마진이 좋아서 영업이익이 많이 나는 것은 마치 반도체 가격이 올라 삼성전자가 이익을 많이 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삼성전자 이익은 회계상의 이익일 뿐인가요? 영업이익을 회계상의 이익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표적인 뻘소리입니다. 정유사의 영업이익은 석유제품을 팔아 매출을 발생시켰기 때문에 창출된 것입니다. 현금이 들어오는 영업을 한 겁니다. 이걸 왜 회계상의 이익이라고 하나요?

3.
유가 상승기에 일반적으로 정유사의 이익이 증가하는 것은 재고효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재고평가이익이 아닙니다. 재고자산에서 평가이익이 난다는 뻘소리도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첫째, 래깅(Lagging)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컨대 중동에서 원유를 선적하여 우리나라 정유사로 가져와 정제하고 제품으로 출하하기까지는 한달반 이상 걸립니다. 유가가 상승하고 있다고 해보죠. 그만큼 제품가격도 오르고 있다면 결국 한달반 전에 싸게 도입한 원유로 비싼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격이 됩니다.

원유도입시점과 제품판매시점간 시차 때문에 마진이 증가하는 현상을 래깅효과라고 하죠. 래깅효과는 재고효과라고 할 수 있죠.

마복림 할머니가 밀가루를 한달전에 들여왔어요. 그런데 한달새 밀가루가격이 크게 올랐고, 떡볶이 가격도 올랐어요. 재료로 투입되는 밀가루 가격은 한달전 기준, 떡볶이 판매는 현재 인상가 기준이니 당연히 떡볶아 판매마진이 커지겠죠.

둘째, 과거에 인식했던 원유재고평가손실의 환입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원유가격이 크게 떨어졌을 때 재고자산평가손실로 반영했던 것이 있다면요, 유가가 오르면 그 손실을 다시 일정한 한도내에서 수익으로 환입하는 것입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재고평가손실 환입은 그 규모는 크지 않습니다.

래깅은 유가하락기에는 손실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비싸게 도입한 원유를 정제하여 싸게 팔아야 하니까요. 정리하면 래깅효과와 재고평가손의 환입, 이 두가지에서 재고효과 또는 재고관련손익이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정유사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증가분은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발생한 재고평가이익으로, 실제 수익은 아니다 라고 하는 경악스런 기사도 있었죠.

재고자산평가는 회계기준에서 '저가법'으로 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유사 저장고에 있는 원유가 배럴당 50달러에 도입한 것이라고 해 봅시다. 정유사 재무제표에 50달러로 기록되어 있겠죠.

국제유가가 올라서 원유가가 배럴당 70달러가 되었습니다. 정유사 장부가와 현 시세 중 어떤 것이 저가인가요? 정유사 장부가죠. 그래서 정유사는 원유재고가격을 50달러 그대로 둡니다. 만약 원유가가 하락해 30달러가 되었다고 해봅시다. 어떤 것이 저가인가요? 이번에는 국제시세죠. 정유사는 원유재고 장부가를 30달러로 수정하고, 차액 20달러만큼을 재고자산평가손실로 인식합니다. 별도계정이 있는 게 아니고 매출원가에 가산해버립니다. (원유가격변동에 따른 실제 재고자산평가손실 측정방법은 이와는 좀 다릅니다.)

국제유가가 70달러가 되었다고 하여 20달러의 재고자산평가이익을 반영한다면, 이건 분식회계입니다. 재고자산을 평가하여 장부가보다 올랐어도 그 평가이익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고평가손실은 인식합니다. 유가하락기에는 정제마진이 하락하고, 더하여 재고자산평가손실까지 날 수 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이죠. 그래서 손실이 막대하게 커질 수 있습니다.

5.
영업이익은 대폭 증가하였는데, 영업현금흐름은 대폭 감소하는 현상이 정유업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SK에너지 1분기 연결 영업이익과 영업현금흐름의 변화>

단위 천원
’221분기
‘211분기
매출액

10,391,965,850
5,153,175,964
영업이익

1,189,702,684
281,046,477
영업현금흐름

(502,572,292)
504,092,884

<S-Oil 1분기 연결 영업이익과 영업현금흐름의 변화>

단위:백만원
‘221분기
‘211분기
매출액

9,287,044
5,344,786
영업이익

1,331,959
629,215
영업현금흐름

(876,573)
559,234

<GS칼텍스 1분기 연결 영업이익과 영업현금흐름의 변화>

단위:백만원
‘221분기
‘211분기
매출액

11,289,220
6,427,227
영업이익

1,081,199
632,565
영업현금흐름

(568,736)
23,702

<현대오일뱅크 1분기 연결 영업이익과 영업현금흐름의 변화>

단위:천원
’221분기
‘211분기
매출액

7,242,604,879
4,536,511,869
영업이익

704,547,673
412,821,682
영업현금흐름

(1,022,451,745)
(280,805,942)

정유사는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가가 오르면 운전자본부담이 증가합니다. 유가 오름세가 뚜렷할수록 운전자본부담도 커져 영업현금흐름은 안 좋아집니다. 영업이익은 증가하였는데 영업현금흐름은 감소하였다고 해서, 이 영업이익을 장부상 착시라고 지적한 매체도 있던데요. 회계의 발생주의와 현금주의의 차이, 그리고 정유업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죠. 착시라고 볼 것도 없습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유도입가격도 상승하다보니 정유사는 자연스럽게 재고자산이 증가하게 되고(원유도입가격이 상승하여 정유사 재고자산액이 증가하는 것이지, 도입해놓은 원유재고의 평가액이 커져서 재고자산액이 증가하는 게 아닙니다!!)

유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원유를 많이 도입해 놓는 게 유리하므로 원유도입자금 부담이 커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매출채권 회수와 매입채무 결제간 미스매치가 가세하면 운전자본부담이 많이 커질 겁니다.

지금같은 유가 급등기에는 일반적으로 영업현금흐름은 안 좋아질 수 밖에 없을 거고요. 실제 정유 4사의 '21년 1분기 대비 '22 1분기 영업현금흐름 감소 규모는 거의 4조에 이릅니다.

6.
그렇다고 하여 정유4사에 뭔 큰 문제 있나요? 석유제품 가격이 좋고 정제마진이 워낙 좋아서 매출이 늘고 이익이 증가한 상황이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현금흐름은 개선될 겁니다.

기업들의 증가한 영업이익은 유령이 아닙니다. 회계상의 수치니, 장부상 착시니 하는 이야기를 거론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영업이익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금으로 회수됩니다. 분식회계로 이익을 늘린 게 아니라면요. 물론 매출채권 회수 정도에 따라 현금화되는 영업이익 규모는 달라질 수 있겠죠. 그건 두고봐야 하는 거고요 . 영업이익 자체를 착시라고 할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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