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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아는 '등골 브레이커'

  • Korea Monitor
  • 2022-05-24 12:51
  • (글로벌모니터 김수헌 기자)
미국 육아

미국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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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한국경제신문 기자, 미국 연수 중>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이 동네에서 육아를 하는 것이 너무나 비싸고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었다. 여성만이 육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5세 K그레이드로 초등학교에 보내기 전까지 5~6년의 기간에 대한 비용이 너무나 비싸서 육아를 전담하는 사람이 집에 있지 않고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K에 들어가려면 입학시기에 만 5세여야 하므로(지역마다 다를 수 있음) 사실은 입학시기+1일에 만 5세가 돌아오는 경우에는 만 6세-1일에 입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때까지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보육시설은 몇 가지가 있는데, 데이케어 센터와 프리스쿨 등이 일반적이다. 데이케어가 좀 더 어린 아이들을 봐 주고 프리스쿨은 2~5세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기관마다 실제 서비스 양태는 다양할 것이다.

우리 집 둘째의 경우 프리스쿨에 보냈는데 주3회 풀타임(오전8시~오후5시)은 약 월 1400달러, 주5회 풀타임은 월 2000달러다. 대학 등록금보다 더 비싸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지역마다 프리스쿨 비용은 큰 차이가 있고, 실리콘밸리 지역이 유난히 비싸긴 하지만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프리스쿨은 입학금으로 300달러, 보증금으로 1000달러를 요구했다. 보증금 1000달러는 6개월 이상 다니면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철석같이 받는 돈이라고 여겼으나, 막상 받을 때가 되자 “7월에 등록하는(새학년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곳에 남아있는) 경우 1000달러를 해당 월 수업료에서 깎아준다는 말”이라고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계약서를 다시 보라고 해서 보니 과연 그런 말이 있기는 있다. (분명히 말한 적은 없다.) 수업료를 비례적으로 계산하여 월중에 나갈 수는 없고 무조건 1달 전에 퇴소를 통보해야 한다. 계약서의 모든 문구는 일방적으로 기관에 유리하게 작성돼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2주간, 이스터에는 1주간, 또 이런 저런 이유로 쉬는 기간이 있다 해도 금액은 동일하고, 카드는 받지 않으며 현금 혹은 체크만 받는데 체크는 처리비용 25불을 추가하라며 은근히 현금을 종용한다. 입학금 300달러는 해마다 받는다. 여러 모로 씁쓸한 점이 많았다. 이렇게 내고도 점심은 각자 싸와야 한다. 낮잠 시간은 거의 두 시간에 이른다(물론 아이들마다 수면시간은 자유롭다. 안 자는 아이들도 있다).

이 가격에 이런 서비스를 겪어보니 ‘도대체 이 동네의 엄마들은 어떻게 커리어를 유지하는 걸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학부모회 등등 다양한 경로로 만난 이곳 실리콘밸리의 엄마들 중 상당수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전업주부도 꽤 있었다. 특히 아이가 여럿일 경우 맞벌이 부부가 모두 커리어를 유지하는 데 대한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된다. 기관에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기관에 아이를 보내면서 베이비시터를 추가로 쓰거나, 음식만 담당(오전에 집에 들러 아이 도시락과 가족의 저녁을 준비해놓고 떠남)하는 사람을 고용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서 그렇듯 조부모가 동원되는 경우는 엄청나게 많다.

육아휴직 제도는 한국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이 기본이고 남성도 육아휴직을 1년간 쓸 수 있는 제도가 있는 한국에서는 이것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애초 그런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아기가 태어난 뒤 2~3개월 후면 복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체인력을 고용하는 문제 등은 비교적 잘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휴가와 휴직에 필요한 시간을 우리보다 훨씬 짧게 잡는다. 백일의 아기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 아기가 결코 엄마와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알 것이다.

남성이 일을 쉬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성의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야말로 경단녀 천지네, 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정도다. 학부모회를 같이 하던 엄마들 중에는 글로벌 테크 회사에서 훌륭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일하지 않는 경우가 몇 있었다. 다만 이곳에선 일터로 돌아가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한국에서는 호봉제의 그늘이 아직 남아 있고, 일정한 경로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이 중간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는 원하면 언제든 파트타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 말하자면 일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높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 사회의 ‘육아로 인한 커리어의 기회비용’ 문제를 가려주지는 않는다. 일에 접근할 수 있다 해도, 어쨌든 누구나 시간은 24시간뿐이다. 육아도 풀로, 일도 풀로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육아를 외부에 위탁하는 비용이 이렇게 비싸다면, 부모 중 한 명은 일을 하지 않거나 / 일을 적게 하거나 / 일에 덜 몰입하거나 등으로 그 비용을 상쇄해야 한다.

바로 이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나오는 핵심 쟁점이다. 연수 기간 동안 청강을 했는데, 그 중 배리 아이켄그린(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의 경제사 강의(온라인으로 진행)가 있었다. 4월27일에 진행된 이 수업의 마지막 강의는 전반부 학생의 발표, 후반부 저자와의 대화 순으로 구성됐다(사실 이 수업은 전부 다 그런 식으로 진행됐다. 온라인의 강점을 살려서 전 세계 어디에 있든 교수님이 저자를 섭외해서 강의에 들어오게 하셨다.)

이 책의 내용은 워낙 잘 알려져 있지만,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여성들이 과거와 달리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고, 취업에도 성공하지만 성별 소득격차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여성직업과 남성직업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고 여성들이 ‘greedy work’를 선택하지 않기/못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여성은 육아의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에 욕심만큼 ‘greedy’한, 그리고 덜 유연한(less flexible) 커리어를 선택하여 더 높은 소득을 향해 달려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서술이 아니고 경제사가답게 대졸 여성 집단을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5개 그룹으로 나누어 가급적 유사한 조건에서 서로를 비교하여 내린 결론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재택근무를 하며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은 여성이 커리어와 가정에서 더 많은 성취를 이루지 못하도록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더 또렷이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문 기회가 있어 그에게 도대체 미국 사회가 이것 밖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다른 여학생이 “Great question!”이라고 호응해줬다.) 그는 스웨덴의 사례를 들어 문자 그대로의 혁명은 아니지만 “일종의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그런 혁명을 겪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프랑스는 아주 높은 수준의 보조금으로 육아시설을 지원하고 있고 심지어 영국조차도 미국보다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왜 미국은 다른가’에 대하여 보다 사회적인 거센 운동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굉장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그런 요구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아이가 울고 떼쓰는 것도 정상이다. 다만 그걸 감당할 인내심을 갖는 게 쉽지 않을 뿐이고, 업무 중에는 더더욱 사라진다. 육아부담의 분산 외에 다른 답은 나는 그동안 찾지 못했다. 부부 간에도 분담이 이뤄져야 하지만, 개인과 사회는 당연히 이 짐을 어느 정도 나누어 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

미국 연수기간은 많은 경우 ‘더 좋은 것을 체험하는’ 시기지만, 육아에 관해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 반대에 가깝다. 훌륭한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육아휴직, 육아시설-이 없이는 한계가 있다. 커리어와 가정을 병행하는 문제는 개인 차원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차원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미국 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보다 근본적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골딘 교수의 설명에 100%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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