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성<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애널리스트>
22.04.07
#1 외양간(은행) 고치기 – 분할상환을 왜 하냐고???
1.
“금감원 이달부터 가계대출 고정금리/분할상환 지도 강화”
신용평가사에서 일할 때, 건설이 주력이었다. 운 좋게도 이직 후엔 건설업 외에 다양한 산업을 맡았고 그 중에서도 제일 오랜기간 함께했던건 해외은행 심사/평가 업무였습니다. 유럽과 CIS, 아시아에 소재한 수백개 은행들 내부등급 쏘느라 무디스, S&P의 은행보고서들 신명나게 파고 해외은행 담당자 3명이서 노가다하며 격년으로 개도국은행편람 이라는 아무도 안보는 책자도 만들어야 했습니다(으허허;;)
국내 제조업체들도 커버하면서 연간 수백여 해외은행들 신용평가하는데 당연히 깊게 파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주요 재무비율들(자본적정성, 자산건전성, 수익성, 유동성 등등) 중심으로 구성된 모델에 의존하게 되는데,
희한하게도 신용등급이 저질인 개도국 은행들이 모델등급은 북미/유럽 선진국 은행들보다 훨씬 좋게 나오더랍니다. 뭐 무디스, S&P가 부여하는 은행 등급이야 국가신용등급에 연동되는건 뻔한데, 개도국 은행들 재무지표가 선진국 은행들보다 왜 이리 좋지? 하는 의문에 해외 신평사 보고서들 파다보니 깨달았습니다. 은행이야말로 국가주도의 분식을 하기에 너무나 용이한 산업이라는 것을...
2.
그렇게 은행업과 건설/조선업의 유사점을 찾았습니다. 회계 선수분들께선 공감하실텐데 “진행기준 회계”를 쓰다보니 건설업과 조선업은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둘다 수주 규모를 늘릴땐 부실을 얼마든지 숨길수 있습니다. 문제가 터지는 시점은 수주규모가 줄어 더 이상 돌려막기를 할수 없을 때입니다. 10여년전 해외수주 급증했던 대형건설사들이 먼저 터졌고, 그 뒤 삼중·현중이 번갈아 터지다가 대우조선해양이 최후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은행도, 대출규모 계속 늘릴수 있을 땐 딱 건설/조선이 그랬듯 부실을 숨길수 있습니다. 연체율과 NPL 비중이 낮다? 이제 막 빌려줬는데 연체가 뭐고 NPL이 뭐죠? 걍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하면, 올해 대출 10조 늘린다-하면 이 싱싱한 10조의 여신은 어떤 이상한 자들에게 빌려주더라도 연체고 뭐고 없는 클린한 자산입니다. 차주의 만기 상환이 힘들 경우 은행이 대출자산을 늘릴 여력만 있다면 만기연장을 해주면 됩니다. 대출규모의 확대는 곧 이익규모의 확대라서 수익성도 덤으로 챙깁니다. 건설/조선사가 수주를 많이할수록 이익을 더 크게 만들어낼수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크게 데여보니’ 건설사나 조선사의 수주규모가 계속 커지는 것을 이제는 리스크로도 인지하듯, 은행 자산규모(대출채권)의 끊임없는 성장은 잠재된 리스크 확대를 내포합니다. 그것도 만기일시상환 방식으로? 으허허허~~ 선수분들께선 조선업의 heavy tail 리스크를 잘 아실겁니다. 물건 팔고나서 길어야 수개월 내에 대금을 지급받는 제조업에선 발생하지 않는 리스크죠. 글로벌 신평사에서는 만기일시상환방식을 bullet loan이라하여 이 비중이 높을수록 은행의 대출자산이 매우 위험하다고 평가합니다.
3.
은행은 “돈”이라는 물건을 파는 곳이라고 상상하며, 현대차가 자동차를 파는 상황과 비교해보겠습니다. 차1대(제네시스 G90)에 1억이라 치고, 구매자가 물건을 먼저 받습니다.
“물건값은 어떻게 드리면 되죠?”
(1) “네, 다음달까지 1억원 주시면 됩니다, 그보다 늦으시면 가산됩니다”
(2) “네, 3개월마다 600만원씩 총 20번 납부하시면 됩니다”
(3) “허허~~ 3개월마다 100만원(1억원에 대한 이자)만 내시면 되고요, 물건값 1억원은 5년뒤 한꺼번에 주세요~”
(1)번은 일반적인 제조업의 판매방식이고,
(2)번은 일반적인 할부판매, 은행의 원금분할상환 대출이고
(3)번은 조선업의 heavy tail, 은행의 만기일시상환 방식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고생한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결국 (3)의 방식으로 판매하다가 “어 미안~~ 5년전엔 우리가 1조원을 줄수 있을줄 알고 계약했는데, 이제와서보니 돈이 없네~~”하며 내뺀 놈들 때문이죠.
"(3)이 (1), (2)보다 훨씬 위험하다는걸 누가 몰라? 근데 집을 담보로 잡잖아- 그러니 안전하지!" 라~~~~고 여기다가 먼저 숱한 부실을 겪어본 선진국들은 담보를 잡아도 (2) 방식으로 대출하는걸 관행으로 정착시킵니다. (3)의 방식은 월 100만원씩만 내면 되니 만기전까진 연체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2)의 방식은 월 600만원씩 내야하니 만기 전에도 연체가 발생할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연체율은 높아지지만 정작 전체대출의 건전성은 훨씬 우수해지는 아이러니.. 선진국 은행들의 연체율이 우리나라 은행들보다 높은 이유입니다. 현대차가 (3)의 방식으로 판매하면서 매출을 계속 늘린다? 이건 (1)의 방식으로 팔면서 매출이 좀 줄어드는 것 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것 같습니다.
4.
헉쓰 게다가 대부분 변동금리이니 분기 100만원씩만 내면 된다던 이자를 이제부턴 분기 250만원씩 내라고 하면.. 그리고 앞으로 더 오를 예정이면.. 문제가 생길까 안생길까?
자산확대에 돌입하게 되면- 과거엔 거부되던 차주에 대해서도 여신이 실행되야 하다보니 심사기준을 완화하거나 등급이 낮은 차주를 유입하게 되고, 심사역의 업무량이 과중해짐에 따라 부실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통상 거시경제의 총량지표 증가율을 뛰어넘는 대출자산의 증가율을 “위험한 성장”으로 간주합니다. 실질 가계대출(기업대출로 잡히지만 실질 차주는 가계인 것도 포함).. GDP 성장률에 비해 지나치게 커져왔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는데- 서두에 썼던 “개도국 은행들 재무비율이 선진국 은행들보다 왜 이리 좋지?” 하는 의문에 답하자면, 선진국 은행들은 금융위기 발생 이후 어쩔수 없는 디레버리징(자산 구조조정)에 들어가다보니 연체율, NPL 비율, 수익성 등 온갖 은행 평가지표가 어그러져버린 반면, 개도국 은행들은 가계든 기업이든 대출확대가 진행되며 수익성, 건전성 등의 지표를 외견상 양호하게 유지했던 것입니다. 흐흐흐.. 이 지표들을 믿어 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