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참의원 선거 전에도 시장은 일본은행의 7월말 추가완화를 기정 사실화한 상태였다. 아베 내각이 올 가을(9월중) 재정정책 위주의 부양패키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것도 이미 지난 5월말 G7정상회담을 전후로 발표된 것이다. 그렇다면 참의원 선거후 시장을 설레게 하고 있는 장치는 무엇일까. 아베의 압승에 따른 안도랠리? 이 역시 선거 과정에서 이미 예측된 것이니 논외다.
결국 어제 오늘 도쿄금융 시장을 움직인 장치는 크게 두가지다. ▲버냉키와 구로다, 그리고 아베의 회동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누적돼 있던 투기적 엔 롱(long) 포지션의 언와인딩이다. 전자는 시장에 상상력과 기대감을 제공하며 후자는 그 기대감이 가격지수로 반영되는 속도에 힘을 보탰다.
이날 버냉키와 아베의 회동 후 나온 정부측 브리핑은 내용이 풍성하지 않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이날 오후 브리핑에 따르면 아베 총리와 만난 버냉키 전 연준의장은 "재정정책 수단을 통해 명목 GDP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여기에 협조해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면서 "BOJ는 금융완화를 위한 수단이 아직 여러가지 존재한다"고 말했다.
스가 관방상은 "이날 회동에서 세계 경제 전망과 함께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피, 일본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고 설명했다. 헬리콥터 머니와 관련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전했다.
지난 20년간 일본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올들어 모르모트는 대내외 역풍 속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벽을 뚫고 계속 전진할지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 할지, 그냥 버틸지. 그 갈림길에서 버냉키의 찬조 출연은 과연 무엇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①헬리콥터 머니의 법적 걸림돌 : 버냉키의 등장으로 한층 주목도가 높아진 일본의 `헬리콥터 머니`는 가능한가. 집권당의 정치적 토대가 확고한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 헬리콥터 머니를 펴기 좋은 여건이다. 백약을 다 써봤기에 남은 것은 헬리콥터 머니 정도인 것도 사실이다.
허나 걸림돌이 있다. 일본의 재정법 5조와 일본은행법은 일본은행에 의한 정부재정에 대한 금융(financing) - 부채화폐화 - 을 금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위해 무제한으로 국채를 BOJ에 매수토록 하는 것은 법을 고치지 않으면 쉽지 않다. 물론 현재 의회 구도를 보면 이 정도 법을 수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간 자민당 내에서는 일본은행법을 고치자는 의견이 심심찮게 제기돼 온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 재정법과 일본은행법 개정에 착수할 경우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주요 변수다. 엔화 가치가 당국 통제를 벗어나 제대로 폭락할 위험- 교과서적 위험 - 을 간과할 수 없어서다
②영구채 : 정부가 영구채를 발행해 BOJ로 하여금 이를 인수토록 하는 방안도 있다. 즉 BOJ 보유 국채 가운데 만기도래분을 영구채로 차환하는 형태다. 굳이 영구채로 전환하지 않아도 BOJ가 내다 팔지 않고 계속 롤 오버를 하면 영구채나 다름 없다.
다만 BOJ가 사들인 저 막대한 국채를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것과 사실상 정부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은 경제주체들(특히 정부측)의 행동에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당장은 아니어도 BOJ가 보유한 저 많은 국채를 어이할까를 생각해보면 영구채로의 전환과 인플레이션을 통해 이를 탕감해 나가는 방식은 언젠가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다 - 사실 이미 그 길을 걸으려 하고 있다.
☞공리를 바꾸려는 부단한 시도
☞100년짜리 영구채
③하던 대로 : 현실에서 큰 잡음없이 취할 수 있는 무난한 형태는 제한된 헬리콥터 머니, 즉 기존 정책의 되풀이다. 지난 2013년(엄밀하게는 2012회계연도)처럼 추경규모를 10조엔 이상으로 늘리고, BOJ가 추가완화로 호응(국채 발행에 따르는 비용을 줄여주는 것)하는 것이다 - 현재 시장이 계산에 넣고 있는 조합이다. 이 경우 시장은 선반영 후 뉴스에 팔자로 대응할 수 있다.
*이 때 BOJ가 취할 수 있는 추가완화는 다음 세가지의 결합이거나 일부다. ▲일부 초과지준에 적용되는 마이너스 금리폭(현재 마이너스 0.1%)을 확대함과 동시에 기존 `대출지원 프로그램`의 대출금리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려 은행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 ▲ETF와 REITs 나아가 회사채 매입한도를 확대하는 것 ▲국채매입 규모를 늘리는 것이다.
④No Atction : 통화정책에 대한 편향에서 벗어나 재정정책에 대한 의존도를 높인다`는 G7과 G20의 합의, 그리고 심화되는 일본국채시장의 왜곡을 감안하면 BOJ는 가만히 있고 재정정책만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경우 기존의 QQE를 그나마 좀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4월과 6월에 나타났던 `BOJ No Action`에 따른 시장충격을 구로다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존 프레임내 정책수단을 좀 더 확대하는 정도로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의문이다. 환율과 주가의 반등이 나타나더라도 지난 1월처럼 단발성에 그칠지 모른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선 차라리 다시 한번 팔짱을 끼는 게 상책이다.
⑤입으로 띄우는 헬리콥터 : 시장은 BOJ가 제대로 헬리콥터를 띄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또 다시 BOJ 정책 한계론을 되뇌일 것이다. 때문에 행동이 아닌 입으로 헬리콥터를 띄우는 것도 방법이다. ③번 같은 조치를 취하면서 "법적 걸림돌이 제거된다면 헬리콥터 머니도 생각해볼 수 있는 정책 수단중 하나"라는 정도로 여지를 열어놓는 형태다.
이 경우 시장은 BOJ 정책한계론에서 일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얼마 뒤 현실화 가능성이 의심받게 되면 시장의 반응은 한층 더 거칠어지고 말 것이다. 이런 식으로 BOJ 통화정책은 시장의 기대와 실망에 점점 더 끌려다니게 된다. 이를 끊어내려면 시장을 제대로 실망시켜야 한다.
< "구로다 바주카 한계" >
BOJ가 더 강력한 통화정책을 위해 레짐을 바꿀 것인가에 대해선 중장기에 걸쳐 확인이 필요한 작업이다. 시장내 고조되는 추가부양의 기대와 별개로 BOJ의 테이퍼링에 대비하라는 의견도 여전하다.
BOJ내 집행이사를 지낸 몸마 카즈오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한 내용을 보자. (몸마는 BOJ에서 조사통계국장과 금융정책담당이사 국제담당이사를 지냈다.) 두달전까지 BOJ에 몸담았던 몸마의 예상은 최근 고조되고 있는 시장의 추가완화 기대와는 정 반대다.
"BOJ는 연간 80조엔 규모로 국채를 매입하는 것을 영구히 유지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지금인가, 좀 더 뒤인가 정도다. 이런 인식하에 그들이 QQE 규모를 현재 80조엔에서 100조엔 혹은 120조엔으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식에 근거하자면 그들이 머지않아 QQE 규모 축소(테이퍼링)를 고려할 것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는 "BOJ의 완화정책은 시장금리를 큰 폭으로 끌어내렸지만, BOJ가 또 다른 바주카로 시장을 놀래킬 여지는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했다.
"12개월내 혹은 18개월내 2% 물가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실 BOJ가 2% 물가목표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제로 물가상승률은 지옥이고, 2% 물가상승률은 천당이 아니다. 그 차이는 크지 않다. 그냥 2%에 근접하면 더 좋다 정도다. 2% 물가 목표를 위해 여러 위험이 존재하는 정책수단을 강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을까."
<"적자국채 발행은..글쎄">
한편 이시하라 경제재생상은 "부양패키지를 이달말까지 마무리하는 한편, 8월중 추경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이시하라는 "(용처가 정해진) 건설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부양을 위한 적자국채 발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추경의 규모나 부양패키지의 규모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부양패키지 마련 시점을 이달(7월)말이라고 언급한 것은 언뜻 BOJ 통화정책 회의와 시기를 맞춘 듯 한 인상을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