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의 물총(update)
- China/Japan Express
- 2015-12-18 16:10
- (글로벌모니터 오상용 기자)
18일 일본은행(BOJ)이 시장을 잠시 놀래켰다. 허나 결론부터 말하면 알맹이는 없었다. 시장 반응에서 이미 결판이 났다. QQE1에서 QQE2에 이르기까지 구로다의 전매특허였던 충격요법은 앞으로 더 힘들어진 듯 하다. 별 거 아닌 보완조치에도 BOJ내 반란표는 적지 않았다.
1. Same Same
자산매입을 통한 본원통화 확대 규모는 연간 80조엔으로 이전과 변함이 없다. 연간 국채매입 총량 역시 80조엔으로 변화가 없었다. BOJ 정책발표후 구로다가 총을 뽑았다는 소식에 닛케이225지수와 달러-엔 환율은 급하게 뛰었다가 곧 가라앉았다. 총은 총인데, 물총이라 판단한 거다.
2. 조삼모사
이날 금융시장을 반짝 들어올렸다가, 실망감만 안겨준 것은 ETF 추가 매입안이다. BOJ는 연간 3조엔씩 보유잔액을 늘리도록 한 기존 ETF 매입방안에다, 추가로 연간 3000억엔 규모의 ETF매입 보완책을 마련했다.
보완책의 시행은 내년 4월부터며, 설비와 인력(임금인상)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의 주식을 포함한 ETF를 대상으로 한다. 기업들의 투자와 임금인상을 유도하기 위한 맞춤형 ETF 매입조치다(BOJ는 관련 ETF가 조만간 개발될 것이라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시장을 허탈하게 한 조항이 하나 더 달려있었다. 과거 은행들로부터 매입했던 개별주식의 매각을 내년 4월부터 재개하기로 한 것이다. BOJ는 지난 2002년 11월부터 은행들의 개별주식 보유비중을 낮추기 위해 이를 일부 떠안았는데, 지난 2007년 10월부터 이를 다시 시장에 매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매각은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에 BOJ는 개별주식의 매각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매각종료 시점은 당초 계획했던 2021년 9월(5.5년)에서 2026년3월(10년)으로 연장했다. 이에 따라 연간 개별주식의 매각 규모는 3000억엔 정도일 것으로 추산됐다.
결론적으로 이번에 `맞춤형 ETF`를 연간 3000억엔 추가 매입하기로 했지만, 딱 그 만큼 기존 보유 주식을 매각하기로 함에 따라 BOJ 대차대조표상 주식부문의 증가속도는 이전과 변함이 없게 된다. 주식시장은 조삼모사, `쌤쌤(same same)`이라 평했다 - 고상하게 표현하면 증시 영향력은 중립이다.
물론 십분 양보하자면 (언젠가) 시장에 풀릴 예정이던 개별주식 매각의 충격을 상쇄하는 보완책이 나온 것이라 평할 수 있지만 시장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3. BOJ판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BOJ판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도 가미됐다. 국채매입 속도는 연간 80조엔으로 변함이 없지만, 보유국채의 잔존연한을 종전 7~10년에서 7~12년으로 연장했다. 즉 장기물을 더 많이 사고 단기물은 덜 사거나 내놓겠다는 이야기다.
장기물 금리를 끌어내린다는 성격도 있지만 단기물 금리가 깊은 마이너스 존으로 빠져드는 것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다. 여하튼 일드 커브는 평평해질 것이다. 캐리트레이드와 환율에 영향을 주는 단기금리의 경우 시장내 다소 상승압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이론상 엔캐리가 감기기 쉽다.
그 밖에 리츠 매입규모는 유지했지만 BOJ가 매입할 수 있는 개별 리츠의 한도는 종전 전체 풀의 5%에서 10%로 확대됐다. 또 `성장기반 강화를 위한 자금공급` 프로그램에 `설비 및 인력 투자에 적극 임하는 기업`을 추가하고 해당 프로그램의 시한을 1년 더 연장했다. 국채시장내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국채보완공급(국채를 대여해주는 제도)을 연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간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4. 반란 3표
사실 이날 필자가 놀란 것은 미미한 QQE 보완조치를 마련하는데도 반대표가 3표에 달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ETF 보완 프로그램(3000억엔어치)과 개별 리츠의 매입한도 상향에 이시다 코지, 기우치 다카히데, 사토 다케히로가 반대했다. 이 정도 정책결정에 반대가 3명이면 더 본격적인 추가완화는 앞으로 더 힘들어지질 않을까라는 시장의 관측이 강해질 수 있다.
5. 궁색해진 구로다..QQE 기술적 한계 의식
이날 구로다는 뭔가 액션을 취하기는 했지만 지난 QQE1과 QQE2에서 보여줬던 충격요법과는 거리가 멀다. 전임자인 시라키와 마사아키 총재 시절의 `찔끔찔끔` BOJ(추가대책을 찔끔찔끔 내놨던 BOJ)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QQE가 내포한 기술적 부작용을 보완하려는 시도도 등장했는데 이는 QQE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시장내 의구심을 키울 수 있다. 국채보완공급 조건을 완화하기로 한 것, 그리고 *금융기관들의 적격담보 감소에 대응하기로 한 것은 BOJ 스스로 국채시장내 왜곡이 커지고 있음을 시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QQE의 장기국채 매입으로 금융기관이 보유하는 적격담보가 감소함에 따라 외화표시 증서 대출채권을 적격담보로 인정하는 한편, 금융회사 모기지채권(모기채권의 신탁형 pool)을 담보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날 BOJ가 꺼내든 대책은 기업들의 임금인상과 설비투자 확대를 독려하기 위한 맞춤형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다고 임금인상과 설비투자를 꺼리던 기업이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그간 본원통화 공급에 변화를 꾀했던 BOJ 본연의 정책 툴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조치가 나왔다. 아베 내각의 정책을 서포트하는 혹은 내각의 정책방향과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구로다의 역할은 여기까지며 이제 남은 것은 정부와 기업의 몫이라는 인상도 풍긴다.
알기 쉬운 방식으로 (ex 두배 세배) 시장과 대중의 기대를 쥐락펴락했던 게 종전 구로다의 방식이다. 이번 조치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궁색함마저 느껴진다. 기존 QQE의 `서프라이즈, 엔 약세, 증시 견인`이라는 색체들이 퇴색하면서 시장은 구로다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음을 느끼고 있다.
(update)구로다 "예방적 조치"
이날 기자회견에서 구로다는 이번 조치는 추가완화가 아니며 보완조치임을 재차 강조했다. 필요한 경우 주저없이 과감한 추가완화에 나설 것이라 강조했다.
이어 BOJ 보유국채의 평균 잔존기간을 7~10년에서 7~12년으로 확대한 것은 예방적 조치로, 미리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로다가 언급한 `예방적 조치`란 중의적인데 ▲현행 QQE의 순조로운 진행을 돕기 위해서라는 의미와 ▲향후 추가완화 조치 즉 초장기물 중심으로 국채매입을 확대할 것에 대비한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뉘앙스를 동시에 풍기는 듯 하다.
다만 이 역시도 "미리 장애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국채매입 운용이 힘들어지고 있는가"라는 시장의 의구심을 키울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