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돈키호테가 된 뉴질랜드 중앙은행

  • Analysis
  • 2014-05-20 06:20
  • (글로벌모니터 안근모 기자)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그램 휠러 총재가 이달 초 "뉴질랜드 달러가 더 절상된다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 처음으로 금리인상에 나선 나라다. 지난 3월과 4월 두 달 연속해서 기준금리를 3%로 총 50bp 올렸다. 그러자 고금리 매력을 노린 해외 자금이 쏟아져 들어왔고, 이에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외환시장 개입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경고'에 대해 한 외환시장 애널리스트는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와 같은 무모한 일"이라고 평했다. 금리를 인상하면서 동시에 통화가치 절상을 막겠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도 중앙은행의 라구람 라잔 총재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지금 "통화정책은 자국 사정에 맞춰 결정하는데, 그 효과는 국제적으로 파급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파급효과가 준비통화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국가들 사이에 비대칭적이고 불공정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가을 이후의 폭발적인 엔화가치 절하로 인해 지난해 2월 러시아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회의에서 G20는 두 가지 사항에 합의함으로써 가까스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환율은 시장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며, 경쟁우위를 확보할 목적으로 환율을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결국 우리와 같은 '비(非) 준비통화 국가'들에게만 족쇄가 되고 말았다. 이 합의에 따라 외환시장에서 외화를 사들이는 전통적인 환율방어는 공식적으로 금기시되어 버렸다. 반면, 일본의 엔화절하 정책은 G20 합의 직전에 별도로 개최된 G7 재무장관 회의를 통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됐다.

이런 독트린 하에서 등장한 최근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매수개입' 경고는, 그것이 무모한지 여부를 떠나, G20의 공조가 균열을 일으키고 있음을 상징한다.

균열의 진원은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과 의회증언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제로금리는 예상보다 더 오래 제공될 수 있으며,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그 속도는 예상보다 더 더딜 수 있으며, 인상 사이클 종료 이후의 금리 수준은 과거의 정상적인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태에서 상당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이후 달러화 이외의 대부분의 통화가치는 큰 폭으로 절상되어 갔다. 이에 참다 못한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초 '유로화 절상 방어를 위한 추가적인 완화조치를 다음달에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ECB는 '유로화 절상 때문에 유로존의 저물가가 장기화할 위험이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대외 경쟁우위를 위한 것이 아닌 자국 내 물가안정을 위한 조치라는 명분이다. 하지만 이는 환율이 시장에 의해 결정되도록 한다는 G20 합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곧 이어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나섰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파운드화의 절상문제를 지적하면서 "영국의 균형 잡힌 회복세를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금리인상이 급하지 않다고 밝혔다. 초저금리 정책을 시장의 예상보다 길게 유지함으로써 환율을 방어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4대 준비통화 국가들의 경쟁적 평가절하가 미국, 유로존, 영국의 순서대로 한 사이클을 탔다. 물론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이 이슈는 지난 1985년의 '플라자 합의', 그 직전 미국 연준의 폭력적인 금리인상, 그리고 그 이전 미국의 금태환 중지 등 끝도 없이 근원을 찾아 헤매야 할 것이다.

문제는, 4대 기축통화 국가들의 이러한 절하 경쟁은 결국 어떤 나라의 통화도 절하시키지 못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더욱 큰 문제는, 기축통화 국가들의 절하 경쟁으로 인해 여타 국가들만 엄청난 금융 불안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최근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돈키호테' 사례는 우리에게도 작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개방된 자본시장 체제 하에서, 특히 기축통화 국가들이 경쟁적인 절하에 몰입하는 상황에서는 뉴질랜드나 한국과 같은 비(非)기축통화 국가의 통화정책은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국의 경제현실에 맞는 독립적인 통화정책 운용이 최소한이라도 가능하도록 할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할 압력을 받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인도 중앙은행의 라잔 총재는 지난달 초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에서 "만약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통화정책이 야기하는 스필오버 효과를 무시한다면, 과거에 스필오버 효과 때문에 문제시했던 QEE(Quantitative External Easing) 즉, 외환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 역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논박한 바 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미국이 백안시 하는 해외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 역시 평가절하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닌 거시 금융의 안정성과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효과적인 보완 수단일 수가 있을 것이다..

둘째, 여타 거시경제 정책들의 조화로운 운용이 긴요해진다. 자국내 여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평가절상 위험 때문에 통화정책의 정상화가 제약을 받는다면 재정과 금융, 조세정책을 보완적으로 운용해야 할 필요가 커질 것이다.

지금 전세계는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의 상태에 빠져 있다. 이것이 가열되는 평가절하 경쟁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진국에 연동해 과도하게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하더라도 실물경제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위험은 상대적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이러한 물가안정은 자칫 지난 2000년대 초중반에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신용팽창과 자산가격 거품을 유도하는 정책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

셋째, 선진국들의 연장된 완화정책은 전세계적인 거품의 형성과 붕괴를 낳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비(非) 기축통화국가들은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의 건전성과 충격 완충능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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