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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태국의 경우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11-07 오전 6:59:04 ]

  • ⓒ글로벌모니터

    태국 중앙은행이 6일 정책금리를 1.25%로 25bp 인하했다. 지난 8월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로 금리를 내려 사상 최저치를 만들었다.

    태국의 정책금리가 통상 우리나라보다 좀 낮게 형성되어왔음을 감안하면, 그들이 먼저 0%대 정책금리에 진입할 수 있겠다. 1990년대말 아시아 외환위기의 진앙지였던 태국의 놀라운 변화다.

    물론 한국의 변화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이다. 두 나라 사이에는 비슷한 면이 많다. 이머징국가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대내외 균형 측면에서 한국과 태국은 특히 유사한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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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위기 전 만성적인 적자를 면치 못했던 태국의 경상수지는 이후 균형을 되찾았는데, 최근 수년 사이에는 '과도한' 흑자로 균형이 기울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태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연히 태국의 외환보유액은 빵빵하게 늘어나 있다. 2200억달러로, 12개월 이상의 수입액을 충당할 수 있는 규모다.

    대내 균형도 지나칠 정도로 안정화되어 버렸다. 경상수지 흑자 레벨이 기조적으로 높아진 지난 2015년 이후로 태국의 인플레이션은 2%를 넘어본 적이 없다. 위기 이후의 역 기저효과 사례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물가상승률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지난 10월에는 0.11%에 불과한 수준이다. 중앙은행 목표 범위 1~4%는 무의미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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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과도한' 대내외 균형을 갖게 된 태국 중앙은행에게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과도한' 통화가치 절상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태국 바트화는 연초 이후 달러에 대해 7.42% 상승했다. 러시아 루블(+9.15%)에 이어 이머징 통화들 중에서 두번째로 높은 절상률이다.

    이러한 바트화 강세는 인플레이션을 더욱 끌어내릴뿐 아니라 대외 의존도가 높은 태국의 경제활동에도 큰 부담을 준다. 관광산업의 경우 태국 GDP의 5분의1 가량을 차지한다.

    태국 중앙은행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0% 부근으로 금리를 내린 이유도 주로 여기에 있다. 바트화의 매력을 희석시키려는 노력이다.

    미국이 태국까지 포함한 무역흑자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금리정책이 통화절상 방어 수단에 있어서 더욱 중요해졌다.

    태국 중앙은행은 자본통제도 대폭 해제해 국내 자금이 해외로 빠져 나가도록 유도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예를 들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외송금을 제약없이 할 수 있게 했고, 국내 중개사를 통하지 않고도 연간 20만달러 이내에서 해외 증권에 투자할 수 도록 허용했다.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은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된 현상들이다. 과소한 소비, 과도한 저축, 그에 비해 과소한 국내투자다.

    이는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금리,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한 통화가치로 표현된다.

    그래서 이제는 이 원인과 결과, 본질과 현상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로를 증폭시키는 중이다.

    다시 말하지만, 20여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진앙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놀라운 움직임이며, 한국의 변화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이며, 두 나라 사이에는 비슷한 면이 많다.

    그 현상들의 유일한 근원은 아니겠지만, 한국과 태국은 '인구와 그 구조의 변화'라는 뚜렷한 공통분모를 갖는다.

    '비준비통화국'이란 지위에는 명백히 변화가 없지만, '이머징마켓'이라는 명칭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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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인구 관련 자료의 출처는 'United Nations, World Population Prospects 2019'

    (생산가능) 인구의 증가율과 그 구조 변화는 인플레이션 및 실질 금리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이 다양한 기관의 반복된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어 왔다.

    한동안 한국처럼 빠른 속도로 증가하던 태국의 인구는 이제 한국처럼 빠른 속도로 둔화하고 있다. 두 나라의 인구증가율은 이미 20년 전에 미국보다 낮은 상태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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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노인 부양률이 미국을 넘어선 것은 지난 1990년대초였다. 공교롭게도(?) 디플레이션에 빠져든 시기와 엇비슷하다.

    UN의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부양률은 앞으로 5년 안에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고인 한국에는 좀 못 미치지만, 태국의 노인인구 비중 확대 추세 역시 매우 가파른 편이다.

    내가 우리 선배들, 우리 부모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된다면, 은퇴 이후에 쓸 수 있는 돈을 훨씬 더 많이 모아 놓아야 한다. 우리 부모님들이 조부모님들보다 훨씬 오래 사실 것으로 예상된다면, 저축을 훨씬 더 많이 해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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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인구를 나이 순서대로 한 줄로 세워서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의 나이를 물어 보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마흔 서넛(2020년 기준 43.7세)이라고 할 것이다. 아직 30대인 미국(38.3세)보다 다섯 살 이상 늙어 있다.

    우리보다는 밑이지만, 태국 인구의 중간 나이 역시 40대(40.1세)에 진입했다. UN의 인구전망에 따르면, 이 지표에서 역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japanification), 극일(克日)의 날이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일본보다 가난한 상태에서 늙어버리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태국은 그래서 일본보다 훨씬 더 열심히 저축해야 한다.

    어쩌면 이는 출산장려에 정부가 돈을 덜 썼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인플레이션이 안 오르는 것은 중앙은행이 돈을 덜 풀어서이기 때문인 것처럼.

    따라서 한국과 태국의 생산가능 인구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빚을 더 많이 지기 위해서라도 소비를 더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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