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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임명된 공무원의 정치행위와 연준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09-07 오전 6:45:44 ]

  • 정치란 무엇인가?

    미국 연방준비제도 주변에서도 '공무원의 정치행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6일 제롬 파월 의장은 스위스 중앙은행이 주최한 대담에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수차례 거듭했다.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그 뜻을 규정할 수 있겠는데, 협소하게는 희소한 자원의 배분순서를 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필연적으로 권리의 변화를 일으켜 공정성 시비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정치는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선출된' 공무원만이 행사하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다. (선출되기 위한 행위, 자원배분 방식의 변경을 위한 정권획득 추구 행위들도 물론 정치에 해당한다.)

    죄와 형벌뿐만 아니라 세금의 종목과 세율을 모두 법률에 정하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률은 선출된 공무원들의 기관인 의회가 만든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국회는 예산을 심의확정하고 정부의 국가 채무부담 행위를 사전에 의결한다.

    역시 선출된 공무원인 행정부의 수반은 의원과 마찬가지로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으며, 법률이 위임한 범위 안에서 자원배분을 변경하는 행위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행정부의 임명된 공무원들은 선출된 공무원들이 법률로 정한 사항을 집행한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에 의해 보장된다.

    더들리가 촉구하는 '연준 정치행위'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6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거품을 물었다. 얼마 전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쓴 화제의 칼럼 때문이다. 당시 칼럼에서 더들리는 '트럼프 대선 패배'를 노리는 통화정책을 촉구하는 인상을 주었다.

    "심지어는 대선 자체도 연준의 고려범위 안에 들어간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틀림없이 미국 경제와 글로벌 경제, 연준의 독립성과 고용 및 물가 상승 목표 달성능력에 위협을 가할 것이다. 통화정책의 목적이 최선의 장기적 경제결과를 쟁취하는 것이라면, 연준 위원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2020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해야 한다." (2019.8.27, 더들리 칼럼 "연준은 트럼프 무역전쟁을 조장해서는 안 돼")

    커들로는 더들리 칼럼에 대해 "너무 나갔다.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정치화한 성명.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 최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옳은 지적이다.

    더들리는 1)트럼프 무역정책이 미국 경제에 피해를 입힌다고 규정하면서, 2)완전고용과 물가안정 책무가 있는 연준은 따라서 트럼프의 재선을 통화정책으로써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들리의 주장은 일견 형식적으로 그럴듯해 보인다.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저해하는 트럼프를 낙마시키는 것이 법률이 부여한 연준의 책무를 다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정치행위이다. 임명된 공무원의 권한을 완전히 벗어난 짓이다. 왜냐하면 1)무역정책은 정치의 영역이며, 2)특정 무역정책이 경제에 피해를 입히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 역시 정치행위이며, 3)그 주관적 따짐의 결과를 근거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일 역시 정치행위이다.

    임명된 공무원의 기구인 연준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법률적 책무를 수행할 뿐이다.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위해 통화환경 이외의 조건을 '변경'하는 일은 정치의 영역이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연준 정치행위'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보좌하는 커들로는 더들리를 그렇게까지 비난할 자격이 못 된다. 그의 보스 트럼프 역시 연준에게 '정치행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대 중국 무역전쟁을 핵심 국정과제로 정해(이렇게 정하는 게 정치행위이다) 수행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부터 연준에게 "매치(match)"하라고 본격적으로 요구해 왔다.

    트럼프가 말하는 '매치'란 중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통화를 대대적으로 발행해 미국 정부의 무역전쟁 환경을 조성하고, 미국 기업들의 통화적 경쟁우위를 보장하라는 요구이다.

    예를 들어 연준이 통상적인 경제 및 금융환경 분석과 전망을 배제하고 오로지 매우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해 준다면 트럼프는 더욱 공격적으로 중국을 몰아붙일 수 있다.

    따라서 이 '매치'는 행정부의 수반인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정책행위에 연준의 참여를 촉구하는 용어이다. 이에 응할 경우 연준은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법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 된다.

    제롬 파월의 '잭슨홀 천명'

    따라서 연준은 트럼프의 정치 참여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더들리의 정치행위 촉구 역시 거절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연준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그 해답을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달 잭슨홀 연설에서 제시했다.

    . 무역정책 수립은 연준이 아닌 의회 및 행정부의 업무이다.

    . 무역정책 불확실성을 포함해 고용과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이든 통화정책 기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 그러나 현 상황에 대한 통화정책 대응을 가이드해 줄 만한 최근의 전례가 없다.

    . 또한 통화정책은 국제무역에 확립된 규정집(roolbook)을 제공할 수는 없다.

    . 다만 우리는 무역 전개양상이 경제전망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 우리 목표를 증진하기 위해 정책을 조정할 수 있다. (2019.8.23 파월 연설 "통화정책에 있어서의 도전")

    이번 파월 잭슨홀 연설의 핵심 문구는 "통화정책은 국제무역 규정집을 제공할 수 없다"이다. 이 표현은 사실 좀 모호하기는 하다. 해석의 리스크를 교묘하게 청중 또는 연설문 독자들에게 넘겨 놓았다.

    규정집(rulebook)이란 게임의 기본 규칙들을 담아 놓은 책자이다. 즉, 파월은 연준 통화정책이 국제무역의 룰을 정할 수는 없다고 밝힌 것이다. 이 룰(rule)이란 가이던스이기도 하고 조건 또는 환경이기도 하다. 즉, 파월은 연준 통화정책이 무역정책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참여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누구에게? 선출된 공무원인 그의 임명권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월 독트린과 더들리 칼럼의 차이점

    그러나 이 천명은 더들리가 촉구한 스탠스와는 명백하게 다르다. 파월은 트럼프의 '매치(match)' 요구를 거부했을 뿐이다. 의회와 행정부의 업무인 무역정책으로 인해 고용과 인플레이션 전망이 달라지게 된다면, 거기에 맞추어 통화정책 기조를 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경기확장을 지속하기 위해 적절히 행동하겠다'는 주문(呪文)도 계속 외웠다.

    더들리의 칼럼은 그 '적절히 행동' 역시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무역전쟁 뒤치다꺼리를 삼가는 데에서 더 나아가 무역전쟁을 하기 어려운 긴축적 금융환경을 조성하거나, 심지어는 트럼프 낙선을 유도하기 위한 경기침체 조장을 은근히 촉구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명백히 연준의 법적 책무 위반을 주장하는 것이자, 민주주의의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물론 연준 내부에는 트럼프 무역전쟁 및 그에 부응하는 연준 역할 요구에 대한 반감이 존재하는 듯하다. '트럼프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면 지난해 12월 FOMC가 금리를 올리지 않았을 것'이라 했던 스탠리 피셔 전 부의장의 폭로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연준의 법적 책무 수행이다. 트럼프에 대한 반기류가 설사 통화정책에 반영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 책무 수행에 반하는 것임을 입증할 수 없다면 '정치적 행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12월 FOMC는 좀 아슬아슬했다.)

    파월 연준의 향후 행보는?

    그렇다면 금융시장은 파월 연준의 스탠스를 어떻게 예측해야 할 것인가?

    파월이 아무리 까칠하게 나온다고 해도 파월은 파월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트럼프가 선택한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온건한 비둘기 진영이다. 따라서 통화정책 기조는 기본적으로 대체로 경제와 금융시장에 완화적으로 제공할 것으로 계속 예상된다.

    다만 파월 연준은 '완화적 서프라이즈(dovish surprise)'는 삼갈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무역전쟁 규정집을 제공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며, 그 결과 트럼프의 무역전쟁 도발을 격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월 연준의 기본 스탠스는, 선행적(proactive) 보험 제공이란 주장에도 불구하고, 후행적인 data-dependent, 잘라가기 전술(salami-slice tactics)일 것으로 보인다. 추가 부양이 필요하다면, 손톱을 잘게 뜯어 먹듯이 전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통화정책 전술의 제약을 뜻하기도 한다. 과감한 서프라이즈 카드는 그 자체로 정책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일 수도 있으나, 전술한 이유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9월 FOMC의 초점은 이제 다시 '점도표'로 옮겨진다.

    지난 6월 점도표는 절반에 가까운 위원들(7명)이 연내 두 차례 금리인하를 제시했다. 그 두 차례가 컨센서스로 유지된다면 파월 의장의 "장기간 인하 사이클이 아닌 확장 사이클 중간에서의 정책 조정(mid-cycle adjustment)" 주장도 유지되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대로 올해 총 3회 인하 점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수로 찍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나, 둘 다음은 많다"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시적인 소폭의 정책조정이 아닌, 일련의 인하 사이클에 돌입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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