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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Going Direct" (직배송, 直配送)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08-21 오전 6:36:31 ]

  • ⓒ글로벌모니터

    미국 연방준비제도 온건 비둘기에서 강경 매파로 탈바꿈한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다음번에 경기침체가 도래하면 양적완화(QE)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 말을 반박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연준은 다음번 경기침체 때 QE를 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이미 1.5% 안팎으로 떨어져 있는 벤치마크 10년물 수익률을 얼마나 더 낮추어 경기를 진작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경제와 자산시장에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따질 때 우리는 중앙은행의 정책 의지와 능력을 재어봐야 한다.

    이 중에서 정책 능력이라 함은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여력(실탄)과 그 여력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역량 및 그 정책이 실제 파급되는 영향력까지 포괄한다.

    그동안 Editor's Letter는 중앙은행의 의지와 여력 및 역량에 관해 수차례 논해 왔는데, 오늘은 그 영향력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 결론은 역시 부정적이다. 역시 새로운 레짐(regime)이 필요한 이유(새로운 레짐이 도래하리라 예상하는 근거)가 된다.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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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디맥에 따르면,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평균 금리는 지난해 11월에 고점을 형성한 이후 지금까지 134bp 떨어졌다. 같은 만기의 미국 국채 수익률이 사상 최저치로 내려갔으니 더 하락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30년 모기지 금리의 역대 최저 기록은 지난 2012년 11월의 3.31%이다. 앞으로 30bp 가량 남았다.

    모기지 금리가 대폭 떨어진 덕분에 대출신청은 크게 증가했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가 집계하는 관련 지수는 지난 2013년 6월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했다. 그러나 역대 최저 수준에 근접한 이자율에 비례한 만큼 대출이 많아진 것은 아니다. 이유가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데이비드 버거 등 이코노미스트들은 지난해말 발표한 논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3%이던 금리가 2%로 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과거에 그 3% 금리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것이라면 많은 가계들이 모기지를 리파이낸스 하려는 유인을 가질 것이다. 이는 소비지출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종전에도 금리가 오랫동안 2% 밑에서 유지된 적이 있었다면, 많은 가계들의 대출은 이미 저금리를 확보해 두었을 것이다. 금리가 인하되어도 리파이낸스로 반응할 유인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미국의 30년 모기지 금리는 금융위기 이후의 변동 범위 이내에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03년 사이 30년 모기지 금리는 3.1%포인트 하락했다. 2008년부터 2013년 사이에는 3.2%포인트 내렸다.

    그 정도의 충격이 이번에 똑같이 가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금리가 200bp가량 더 떨어져야 한다.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의 절대 수준이 200bp인 상황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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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은행의 정책여력이 극히 제한된 가운데 그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장금리는 이미 기록적인 수준으로 내려가 있다. 유럽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유로존 OIS 시장에서는 ECB 정책금리가 지금보다 30bp 이상 인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기껏해봐야 마이너스(-) 70bp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독일 국채 수익률은 2~5년 영역에서 이미 -1%에 육박하고 있다. ECB가 다음달에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를 재개한다고 해도, 이미 대폭 떨어져 있는 시장금리를 얼마나 더 낮추어 경기를 부양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중앙은행 정책의 결과가 아닌, 시장의 인식에 의해서는 수익률이 더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 기업금융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회사채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만기가 짧은 투자적격 등급 회사채에서 더 이상 일드(yield)를 얻기 어려워짐에 따라 수요가 장기물로 확산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주에는 사상 처음으로 유로 회사채 10년물에서 마이너스 수익률이 탄생했다(네슬레). ☞ 관련기사: 마이너스 금리, 장기채로 전염…유례없는 금리변동 위험 노출

    이런 상황에서 ECB가 과연 어떻게 더 해야 기업들의 차입투자 욕구를 자극하고 총수요를 늘릴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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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은 최근 보고서에서 새로운 통화-재정정책 레짐(regime)을 제시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실탄이 소진되어 기존의 비전통적 통화정책(unconventional monetary policy)으로는 경기대응이 불가능하다며, "전례가 없는 정책 공조(unprecedented policy coordination)"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새 정책 레짐은 이름하여 "Going Direct"이다. 한자로 의역하자면 직배송(直配送)이다. 전례가 없는 정책 공조란 굉장히 공격적인 "화폐발행을 통한 재정정책(monetary-financed fiscal facility)"이다.

    "전례가 없는 정책대응은 통화정책이 소진되었고 재정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경우에 필요해진다. 이 대응에는 "going direct"가 포함된다. "going direct"란 중앙은행 자금을 대중 및 민간부문의 손에 직접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going direct"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아마 '헬리콥터 머니'일 것이다. 중앙은행이 하늘에서 돈을 뿌리면 소비자들에게 자금이 직배송 된다. 다만, 블랙록 보고서는 절제된 방식을 택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없이 "딱 적당한 수준의 물가안정만을 달성하기 위해 헬리콥터 머니를 사용해 본 경험이 역사적으로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서는 ECB에게 약간 다른 묘안을 제시했다. "성인 모두에게 만기 없는 무이자 특정대출을 실시"하라는 것이다. 이 자금은 이자가 없고 만기도 없기 때문에 상환부담이 제로(0) 즉, 공짜돈이다.

    다만 어쨌거나 '대출'의 형태로 돈을 뿌리는 것이기 때문에 화폐발행으로 인해 생긴 중앙은행의 부채(통화)는 '자산'에 의해 매칭이 된다. 그리고 그 채권자산(소비자로부터 돌려받을 돈)은 만기가 없고 이자도 없기에 부실화할 위험도 전무하다. (실제 소비자에 돈을 직배송하는 과정에는 기술적으로 은행이 끼어들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 대해 보고서는 '정부가 필요시 사용할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중앙은행에 개설하라고 권고했다. 지난 2016년 벤 버냉키 전 의장이 제안했던 아이디어다. 이 경우에도 정부는 재정이 경제에 신속하게 전달되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것처럼)

    블랙록의 이 보고서 저자들 대부분(4명 중 3명)은 놀랍게도 주요 중앙은행의 수뇌부를 역임한 인사들이다. 저자 명단에는 더욱 놀랍게도 스탠리 피셔 전 연준 부의장이 블랙록 선임 자문역 자격으로 포함되어 있다.

    논문에 참여한 필립 힐데브란트 블랙록 부회장은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 출신이고, 장 부아뱅은 캐나다 중앙은행 부총재를 지낸 인물이다.

    영미 주요 매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보고서는 이번 주 예정된 잭슨홀 심포지엄에서도 화제가 될 듯하다.

    장 부뱅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별도로 칼럼을 올려 "다음 리세션에 대항해 어떻게 성공적으로 전투를 펼칠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다른 어떤 단기적 통화정책 완화보다도 신뢰를 쌓는데 중요하다"며 "올해 잭슨홀에서 중앙은행가들이 과감한 접근법을 수용하기 시작하기를 희망해 보자"고 말했다.

    *힐데브란트 블랙록 부회장은 지난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이후에 보았던 것만큼의 커다란 통화정책 레짐 체인지를 앞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운이 다해야 변하는 이치(窮則變)는 정책 레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정책 레짐 역시 항복과 절망을 거치며 바닥을 확인한 뒤에야 바뀔 수가 있다. 금융위기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새로운 레짐으로 만들었듯이, 돈을 찍어 정부가 뿌리는 '전례 없는 정책공조' 역시 무엇인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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