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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이론과 실천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07-16 오전 7:12:48 ]

  • ⓒ글로벌모니터

    지난 2015년 12월16일, 중국 외환시장 불안이 여전히 전세계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던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역사적인 금리인상 개시 결정을 내렸다.

    그날 회견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존 힐센라스 기자가 재닛 옐런 당시 의장에게 물었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의 진전 양상을 "조심스럽게(carefully)" 모니터하겠다고 성명에서 밝혔는데, 추가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오른 것을 확인한 뒤에나 단행하겠다는 의미냐고.

    이에 옐런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2%까지 올라가야 금리를 더 올린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답하면서 "이론(theory)"에 근거한 "합리적 확신(reasonable confidence)"을 언급했다.

    그 이론이란 다름 아닌 '필립스곡선'이었다. 당장은 인플레이션이 낮더라도 고용시장이 꾸준히 타이트해지고 유휴노동자원이 소진되어 간다면 인플레이션은 미래에 결국 오른다는 것을 현재에 미리 알 수 있다는 이론이다.

    * 그 '합리적 확신'이란 표현은 금리인상 개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던 그해(2015년) 초부터 일종의 키워드 역할을 했다. 지금 당장은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목표를 향해 올라갈 것이며, 결국에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점을, 그냥 감(感)이나 촉(觸)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그것도 그냥 희망하거나 기대만 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게 된다면 금리인상을 개시한 뒤 계속 올려 나갈 것이란 게 당시 연준의 입장이었다.☞ 관련기사 : "물가가 반등할 것이란 합리적 확신이 없다"

    "인플레이션이 회복되어 갈 것"이란 당시 연준의 전망은 지배적 이론에 따른 것이었기에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그 합리적 전망은 지배적 이론에 기반한 것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이론"에 기반한 "합리적 확신"은 당장의 인플레이션이 목표에 미달한 상황에서도 금리인상을 개시하고 그 사이클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정당한 명분이 되어 주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옐런 의장은 Editor's Letter가 두고 두고 기억해 온 이 말을 덧붙였다.

    "만일 그 기반이 되는 이론이 옳다는 게 확인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예상했던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목표에 미달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게 아니고 타이트해진 노동시장에 의해 사라지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분명히 멈추어 재고(再考)하게 될 것이다." ☞ 관련기사 : "10%의 확률"…90%는 이론과 유가에 맡기다

    '멈추어 재고(pause)'라는 표현이 모호하다고 느꼈는지, 로이터 기자가 재차 질문했다. "당신은 맨날 저물가가 일시적이라고 하지만, 물가를 짓누르는 새로운 요소들이 날마다 등장하고 있다. 만약 앞으로 일년간 인플레이션이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다면 당신의 이론이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옐런 의장은 이렇게 답했다.

    "만일 일시적인 요인들이 인플레이션을 끌어 내리는 것으로 분석된다면 그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구조적인 요인들이 있거나, 또는 우리 이론에 어떤 문제가 있거나, 혹은 일부 글로벌 디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이지 않은 지속적인 양상으로 인플레이션을 끌어 내린다고 우리가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의 정책을 수정해 2%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우리는 분명히 조치를 취할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대응에 나서야할 만큼 2% 목표에 지속적으로 이탈하게 될 것이란 점을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3년 7개월 뒤, 후임자인 제롬 파월 의장이 결국 "이론(theory)"의 절반을 폐기했다.

    '이론' 논란의 지난 이력을 장황하게 설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론은 중앙은행이 정책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토대이다.* 통화정책이 한 번 그 이론에 기반하면 적어도 수년간의 정책사이클이 그에 지배된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차용하는 이론의 변경은 향후 통화정책 전략 역시 중대한 변화를 보일 가능성을 내포한다.

    * 중앙은행은 비교적 확립된 이론에 기반하여야 신뢰와 동의를 얻을 수 있다. 만일 특정 통화정책 기조에 불만이 있다면, 그 정책기조가 기반하고 있는 이론의 결함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 이는 이른바 '법의 통치'와 비슷한 개념이다.

    ⓒ글로벌모니터

    파월 의장은 지난 11일 상원 보고에서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약해지고 또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전날 하원에서는 "약한 인플레이션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지속될 위험이 있다"며 "국내외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하방압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더라"고 밝혔다. 필립스곡선 이론이 폐기 직전이란 의미다.

    그 과정에서는 백악관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9일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연준에게 "고용지표는 신경쓰지 말고 물가안정 목표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커들로의 이 말은 앞뒤 맥락없이 들을 경우 매우 놀랍게 들릴 수도 있다. "물가는 신경쓰지 말고 고용에 집중하라"고 정부가 요구하는 것이 올드 노멀(old normal)에서는 훨씬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고용지표는 굉장히 좋은데 인플레이션은 낮은 작금의 경제상황이 이런 기현상을 야기했다. 물론 그 자체로 뉴 노멀(new normal)일 수도 있다.

    커들로는 기자들에게 "나는 내 평생을 필립스곡선 이론에 대한 도전에 쏟아 왔다. (연준 이사 후보자로 지명된 한 때의 금본위제 주창자) 주디 셸튼이 앞으로 그것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셸튼은 지난 5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연준에 부여된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책무는 "모호한 목표"라고 주장하며 인플레이션에만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따라서 지난주 의회보고에서 파월 의장이 6월 고용지표 서프라이즈에도 불구하고 "경제전망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 역시 백악관 커들로 위원장의 주문에 충실한 리액션이라고 할 수 있다.

    파월 의장은 보고에서 심지어 "노동시장이 뜨겁다고 할 만한 어떠한 근거나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따라서 실업률이 앞으로 설사 더 떨어지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낮게 유지되는 한, 높은 수준으로 뛰어 오르지 않는 한, 그렇게 올라간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고공행진을 하지 않는 한, 파월 연준은 끊임 없이 '추가 완화'를 요구하는 압력을 스스로 초래하게 되었다.

    그래서 '압력에 굴복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혹은 스스로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파월 의장은 지난 2015년 12월 옐런이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이론(theory)'을 들고 나와 자신의 스탠스에 대한 "합리적 확신(reasonable confidence)"을 마케팅해야 할 것이다.

    '필립스곡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행히 새로운 대안 이론은 차고 넘쳤다. 그리고 이 이론들은 '필립스곡선 사망'을 운운하기 이전에, 고용시장 자체가 여전히 목표 미달상태임을 시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14일자에서 소개한 매릴랜드 대학 Katharine Abraham과 John Haltiwanger의 논문이 그 중 하나다. 이들은 실업률의 한계를 지적하며 '고용주들의 구인활동'까지 포함한 다양한 변수들의 측정지표를 새로 개발했다. 이 지표에 따르면, 미국 노동시장은 실업률보다 변동이 작았다. 경기침체 때에는 고용수축이 그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았으나, 그 이후에는 고용회복이 그다지 강력하지도 않았다. 리세션의 충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게 나이라는 시사점을 준다.

    샌프란시스코 연준의 Regis Barnichon과 바르셀로나 경제대학원 Geert Mesters가 인구 고령화를 감안해 새로 고안한 대체 실업률 역시 고용시장에 여전히 개선여지가 크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댈러스 연준의 Carlos Zarazaga와 Emil Mihaylov가 인구구조 변화를 감안한 조정 총노동시간을 산출해 본 결과 현재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적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또한 고용시장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지난주 파월 의장이 밝힌 두 가지 금리인하 검토 이유는 상이한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었다.

    해외경제의 부진과 무역 불확실성은 미국 경제성장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보험'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예상보다 더딘 인플레이션 회복세,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못하는 뜨겁지 않은 고용시장은 '부양'을 필요로 한다.

    보험은 일시적이고 수위가 낮은 완화조치이지만, 부양은 그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설사 해외경제 및 무역 관련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된 이후에도 낮은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한 완화적 통화정책 요구와 압박은 계속될 수 있다. 역시 지난주 파월 의장이 자초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연준의 과감한 보험과 부양이 가해져 인플레이션이 크게 뛰어 오른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 대응할 이론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골드만삭스의 스펜서 힐 이코노미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현재 연간 경제 성장률을 실제보다 1%포인트나 낮게 평가하는 실책을 범하고 있다. 가속도를 내며 전개되고 있는 기술진보의 혜택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맵이나 스냅챗 같은 사실상 공짜 디지털제품을 제공하는 스마트폰의 부가가치가 대표적이다.

    만일 미 상무부가 이러한 변화들을 제대로 측정했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장률 3%" 공약은 이미 실현된 업적이 될 수 있다.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미 정부의 성장률 저평가는 기술진보 과정에서 날로 심화되고 있다. 지난 1995년에만 해도 성장률을 실제보다 0.3%포인트 낮게 측정했을 뿐이었는데, 2005년에는 그 정도가 0.5%포인트로 커졌고, 이제는 무려 1%포인트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인플레이션을 항상 체계적으로 실제보다 높게 측정한다'는 이른바 '상향 편의(inflation upward bias)'와도 맞닿아 있다. 실질 GDP가 실제로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이고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이라면, 설사 놓친 명목 GDP가 일부 있다 하더라도, 실제 인플레이션은 지표로 발표되는 것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상향편의, 과대평가는 기술진보 가속도에 따라 날로 심화하고 있다.

    따라서 공석이 되었거나 곧 공석이 될 것으로 알려진 미국 노동부(물가조사)와 상무부(GDP 산출) 장관 자리에는 트럼포노믹스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사를 앉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론과 지표에 충실한 연준은 일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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