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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Far Lower for Far Longer"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06-12 오전 6:02:47 ]

  • ⓒ글로벌모니터

    이른바 "제로금리 하한의 문제(zero lower bound problem)"는 앞으로도 거시경제 및 거시 금융시장의 가장 핵심부 자리를 계속 차지하게 될 듯하다. 금리를 제로(0)% 밑으로 내릴 수는 없다는 이 문제로 인해 금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로를 향해 더욱 더 떨어져 내려가 고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제로 밑으로 내릴 수 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스위스 중앙은행, 일본은행 등이 마이너스 정책금리를 시행하고 있지만,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제로금리 하한을 본질적으로 극복한 것은 아니다.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지 못하는 것은 은행이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은행이 제로 밑으로 금리를 못 내리는 것은 예금인출 사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0%의 이자율을 보장하는 현찰이 마이너스 금리 예금의 대체재로 존재하는 한, 제로금리 하한의 문제는 갈수록 더욱 더 중앙은행을 옭죄어 갈 것이다. 왜햐하면 제로금리 하한 때문에 금리는 갈수록 더욱 더 제로를 향해 떨어져 내려가 고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제로금리 하한의 문제가 없었더라면,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라든가 포워드 가이던스 따위의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들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즉, 제로금리 하한의 문제로 인해 앞으로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들은 갈수록 더욱 더 전통적 수단이 되어 갈 것이다. 왜냐하면 제로금리 하한으로 인해 금리는 갈수록 더욱 더 제로를 향해 떨어져 내려가 고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글로벌모니터

    11일 올리 렌 ECB 통화정책위원 겸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필요한 경우 ECB는 금리를 내리거나 양적완화를 재개하거나 포워드 가이던스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렌 총재는 차기 ECB 총재 후보 중 하나로 거명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기사가 될 만한 발언을 자주 한다. 렌 총재는 "정책위원회는 행동할 결의가 되어있다. 모든 정책수단들을 적절하게 조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와 정치가 장기화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둘러쌓여 있다"며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고조되고 확산된 무역전쟁"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두 나라가 물 밑에서 벌이는 기술 및 경제 패권 투쟁으로 인해 이 무역전쟁은 곧 끝날 것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ECB 핵심부의 무역전쟁 진단이다.

    문제는, ECB가 수행할 수 있는 추가 부양의 여력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데 있다. 즉, 지난 주 마리오 드라기 총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ECB에게는 지금 실탄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나마 좀 더 기댈 수 있는 곳은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보다는 포워드 가이던스이다. 이와 관련해 렌 총재는 "물가안정 목표 달성에 대한 포워드 가이던스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딧세이의 몸을 돗대에 더욱 더 꽁꽁 묶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말로 때우는' 부양정책 역시 여지가 크지가 않다. 그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신뢰를 이미 많이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 하는 것처럼 ECB는 실제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 더 강한 약속을 포워드 가이던스로 제시해야 할 지도 모른다.

    ⓒ글로벌모니터

    지난해 4월26일까지만 해도 ECB의 포워드 가이던스는 제법 강력하게 "묶여있었다."

    현행 초저금리의 유지기한은 "양적완화 종료 이후로도 한참동안"으로 제시되었고, 양적완화의 시행기한은 "2018년 9월말까지 또는 그 이상, 필요한 경우,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인플레이션이 목표에 부합하도록 지속적인 조정경로를 보인다고 판단될 때까지"고 설정했다.

    그러나 그 다음 회의에서 ECB는 양적완화 규모를 줄여 연말에 아예 끝내버리기로 했다. 근원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1% 안팎 수준에 눌려 있었고, 유로존 경기 모멘텀이 두드러지게 실속(失速)하고 있었으며, 이탈리아 불확실성이 고개를 든 가운데, 미국의 보호무역 위협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드라기 총재는 인플레이션의 지속적인 조정에 관한 진전이 상당했고, 목표를 향한 지속적인 수렴이 계속될 것으로 확신이 들며, 양적완화 이후에도 회복세가 자력으로 지속될 것으로 판단됐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믿는 사람도 없었지만, 당시 ECB의 양적완화 축소/종료 결정의 근거는 몇 달 되지도 않아 모두 뻥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현재 유로존의 헤드라인과 근원-근원 인플레이션은 각각 1.2% 및 0.8%이다.

    만일 ECB의 양적완화 여력이 굉장히 많이 남아 있었더라면, 양적완화의 비용 대비 효익에 대한 긍정적 판단이 ECB 내부에 팽배했다면, 그렇게 서둘러서 QE를 종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름을 붙이자면 "양적완화 상한의 문제(QE higher bound problem)"쯤 되겠다.

    올리 렌 총재의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ECB의 포워드 가이던스는 "내년 상반기" 따위의 돌려막기식 칼렌다 약속을 폐기, 오로지 "인플레이션이 목표에 부합하도록 지속적인 조정경로를 보인다고 판단될 때까지"라는 정성적 요소만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정성적' 조건에 대한 ECB의 자의적 해석 전과(前科)가 이미 축적된 상태인 만큼 그것 만으로는 위력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ECB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시행했던 '에반스 룰(Evans rule)' 식의 가이던스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더 낮아진) 현행 금리를 인플레이션이 2%를 최소한 1년 이상 웃돌 때까지 유지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당장 지난 주의 사례만 놓고 보더라도 ECB가 그렇게 강력한 디스인플레이션 파이팅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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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유로존 금융시장의 중장기 기대 인플레이션 지표가 통계작성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금융시장은 앞으로 5년 뒤부터 5년간 유로존의 평균 인플레이션이 1.22%에 불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 약간 밑"인 ECB 목표는 영영 달성 불가능할 것이란 불신이 이 지표에 반영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미 지난 주에도 이 지표는 사상 최저치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음에도 ECB는 여전히 느긋해 보였기 때문이다.

    즉, ECB는 지금 전형적인 'behind the curve'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커브가 이미 아래로 꺾여 움직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은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가면서 눈치만 보고 있다. 왜냐하면 가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주 드라기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가진 게 아주 많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tremendous"한 통화부양 여력을 갖고 있다고 고함친 인민은행의 이강 총재도 그 맥락이었다. (중국과 같은 이머징 중앙은행은 제로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하한에 봉착한다.)

    제로금리 하한의 문제가 없었더라면, ECB가 이렇게까지 소극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적완화 상한의 문제가 없었더라면 ECB가 QE를 그렇게까지 서둘러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ECB는 더 낮은 금리를 더 오랫동안 유지하겠다고 더욱 신뢰할 만하게 약속해야만 할 것인데, 아마도 그 이후에 금리를 다시 올리기는 지금 제로 한참 더 밑에서 더욱 더 내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와 인플레이션의 다이내믹스와 경제주체들의 마인드셋은 제로금리 하한과 양적완화 상한에 봉착한 중앙은행의 불가피한 소극성과 뒷북으로 인해 바닥에 고착해버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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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금리 하한과 양적완화 상한의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이 문제가 없었더라면 지난 2015년 12월 그 난리통 속에서 연준이 금리인상 개시를 강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지난해 12월 그 난리통 속에서 추가 금리인상을 밀어붙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연준은 이른바 선진국들 중에서 완화여력이 가장 많은 중앙은행이다. 그래서 연준이 한 번 방향을 잡고 돈을 풀기 시작하면 다른 선진국들은 강력한 통화절상 압력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므로 연준이 장에 갈 때에는, 다른 중앙은행들, 예를 들어 일본은행 같은 곳은 똥지게라도 지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일본국채 10년물 선물에 내재된 변동성(JGB VIX)는 5개월 만에 최고수준까지 들려 올라갔다. 현재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같은 만기 독일 국채보다 무려 12bp나 높은 상태다.

    물론 미국의 부양여력 역시 보잘 것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준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아껴쓰자니 미흡해서 결국 망칠 것 같고, 화끈하게 쓰자니 얼마 안 되는 실탄을 탕진할 것 같아서다. 내리는 것도 어렵지만, 전술했듯이, 앞으로 되올리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언제나 좀 부족한 중앙은행의 지원은 경제활력과 인플레이션과 금리를 계속해서 잡아당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의 본능이 가세한다.

    디플레이션은 통상 인플레이션보다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재닛 옐런은 연준 의장 당시에 이를 '위험의 비대칭성'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퇴치하기 위해 올릴 수 있는 금리에는 상한이 없는 반면, 디플레이션 치유를 위해 내릴 수 있는 금리와 풀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설사 나중에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것으로 귀결되더라도 디플레이션을 멀리하는 쪽으로 비대칭적인 목표를 잡아야 한다고 옐런은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은행 통화정책은 '사람'이 수행하는 일이다.

    중앙은행 간부의 평판에는 정반대로 비대칭적인 리스크가 존재한다. 돈을 너무 많이 풀어서 경제를 망친 사람보다는 차라리 너무 조여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되는 게 평판에 덜 해롭다. 이것은 매파적이냐 비둘기파냐의 구분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lower for longer(더 낮아진 금리가 더 장기간 지속)'는 이제 'far lower for far longer(훨씬 더 낮아진 금리가 훨씬 더 오래 지속)'가 되어간다.

    중앙은행들이 돈을 더 화끈하게 풀지 않아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중앙은행들이 처해 있는 탈피 불가능해 보이는 딜레마를 보면서 기존의 생각이 더 굳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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