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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트리멘더스(tremendous)"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06-08 오전 7:20:28 ]

  • "We have plenty of room in interest rates, we have plenty of room in required reserve ratio rate, and also for the fiscal, monetary policy toolkit, I think the room for adjustment is tremendous."

    이강 중국 인민은행 총재의 7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단어는 바로 "tremendous"였다. 네이버 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1번이 "엄청난"이고, 2번은 "굉장한, 대단한"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tremendous"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실탄을 과시한 이 총재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최중경이었다. 그는 10여년 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달러-원 환율의 하락을 방어하던 과정에서 실탄 소진론이 시장에서 제기되자 "발권력은 무한대"라고 맞선 바 있다.

    ⓒ글로벌모니터

    '만감이 교차한다' 내지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었다.

    이강 총재의 바로 그 "tremendous"란 단어를 보고 가장 먼저 떠 오른 형상은 삼각형이었다. 국제경제학 교과서에서 '불가능한 삼위일체' 또는 '트릴레마'를 설명하며 쓰는 시각물이다.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인민은행이 자주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해 돈을 "tremendous"하게 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환율이 "tremendous"한 상승압력(위안화 가치의 "tremendous"한 하락압력)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강 총재는 달러당 7위안이란 환율의 레드라인을 잊으라고 주문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수학적 눈금에서 다른 숫자보다 더 중요한 특정한 숫자는 없다(I don't think along this mathematical scale, any number is more important than other numbers)"고 강조했다. 7.1과 6.9의 차이는 6.9와 6.7의 차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숫자로 매겨진 수학의 눈금은 연속되는 것이고 스무스한 것인데 라운드 넘버가 무슨 대사(大事)가 되느냐는 것이다.

    "tremendous"한 정책조정 여력이 있음을 거듭 강조한 이 총재의 발언은 전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말과도 맞닿고 있었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6일 통화정책 위원회에서 일부 위원이 양적완화 재개를, 또 일부 위원은 금리인하를 주장했다고 알리면서 "QE를 수행할 여력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금리인하 시 예치금 금리 차등적용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요 중앙은행의 수장들이 잇따라 "tremendous"한 부양제공 여력을 강조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의식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지난 1997년 쌀쌀하던 어느 초겨울날의 명동으로 이어졌다. 예금인출을 위해 몰려든 고객들로 난리통이던 그 종금사의 창구 안쪽에는 만원짜리 다발이 족히 가로, 세로, 높이로 한 평씩은 되어 보였다. "우리의 유동성이 이만큼이나 tremendous 하니 걱정 말고 그냥 돌아가시라"는 절박한 시위였다.

    ⓒ글로벌모니터

    연상작용은 그렇게 흘러 흘러 도널드 트럼프로 이어졌다. 지난달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인민은행의 "tremendous"를 정확히 예측하면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match"를 주문했다.

    중국이 돈을 "tremendous"하게 풀고, 미국이 이에 "match"해 역시 "tremendous"한 화폐부양을 하면 "여력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유럽 또한 "match"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이강 총재의 "tremendous" 발언을 보면서 Editor's Letter의 뇌리에는 글로벌모니터 창간 직후에 썼던 Morning Brief의 제목("하늘에서 돈이 비처럼" by 버블브라더스)이 떠올랐다.

    JP모건체이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이 오는 9월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로운 벤치마크가 된 예치금 금리를 마이너스(-) 0.1%에서 -0.3%로 20bp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준이 9월 또는 12월에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미일 금리차가 축소되고 엔화가 강해지면 일본의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이 압박을 받을 것이니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이 보고서는 이날 미국 고용지표 쇼크 이전에 나왔다). 만일 일본은행이 연준 움직임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강해지는 걸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JPM의 우가이 히로시 일본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경고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그동안 일본의 은행시스템에 해로운 영향을 끼쳐 정치적인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JPM은 일본은행이 은행들에게 따로 보상을 좀 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로벌모니터

    JP모건자산운용의 글로벌 채권 담당 헤드인 밥 미셸은 이날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이런 상황에서 현금을 들고 있는 것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미셸은 현재 시장 밖으로 물러나 있는 현금이 "tremendous"하다면서 "머니마켓펀드 잔고를 봐라 1조3000억달러에 달한다. 금융위기 이후 최대규모인데 계속 늘고 있다. 완전히 돌았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현금의 무덤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사야만 할까? JP모건자산운용에 돈을 신탁할까? 현금(및 등가물)은 과연 미친 짓일까? 중국은 과연 "tremendous"한 연쇄적 화폐남발을 촉발해 현금을 어리석게 만들 수가 있을까?

    ⓒ글로벌모니터

    Editor's Letter는 이강 총재의 수학에 동의하지 않는다. 6.9와 7은 0.1 이상의 차이를 가질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이 세상 많은 숫자들에는 문턱들(thresholds)이 존재한다. 전기를 일정 수준 이상 쓰면 사용 단위당 가격이 뛰어오르고,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적용 세율이 높아진다.

    +0.10%의 이자율과 -0.10% 이자율은 연속되는 수학적 눈금들의 직선 위에 나란히 있을 뿐이지만, 그 상이한 차원은 20bp의 금리차로 결코 설명할 수가 없다. 이자율 눈금에서 0%는 다른 어떠한 숫자보다 중요하다. 이강 총재의 주장처럼 10bp와 -10bp는 결코 평등할 수 없다. 만일 둘이 무차별 한 것이었다면 그동안 중앙은행들은 왜 금리정책을 버리고 양적완화에 의존했겠으며, 일본은행은 왜 은행들에게 보조금을 줄 궁리를 하겠는가.

    그리고 이는 또한 인간사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어서, 자연에는 수많은 임계점들이 존재한다. 99도에서 100도로 넘어서는 순간 물은 수증기로 변한다. 모순이 누적되면 질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따라서 유로가 1달러 아래로 내려가서는 곤란한 것 이상으로 달러가 7위안 위로 올라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가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별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한강에 뛰어 내려도 목숨에 지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생명을 잃을 위험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강물에 뛰어내리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은 일개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며 화폐가치에 대한 내부의 신뢰가 아직 굳건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나라이다.

    이강 총재는 중국의 환율이 좀 유연해 지는 게 중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를 자동적으로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5~2016년 위안화가 "유연해졌던 때" 중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 역시 결코 좋지가 않았다. 중국은 큰 나라일뿐 선진국이 아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의 연준이 달러 발행을 "tremendous"하게 매치해 준다면 달러-위안은 7위안 위로 올라가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이 경우 중국은 덕분에 "불가능한 삼위일체" 압박을 받지 않고도 돈을 풀어 경기를 띄울 수 있다.

    연준이 금리인상 사이클을 개시하던 지난 2015년말을 전후로 해서 Editor's Letter는 "미국이 중국의 인대를 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미국이 달러를 강하게 조이면 중국의 자본유출 욕구가 더욱 증폭될 것이고, 이 경우 중국은 3조달러의 외환보유액을 탕진하든지, 대규모 실업을 감수하며 경화(硬貨)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든지, 어떻게든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반대로 미국이 중국의 화폐증발에 "매치(match)"한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누가 풍선을 더 크게 부는지를 겨루는 이 경쟁 역시 중국에게는 치명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긴축으로 목이 졸리든, 부양으로 배가 터지든, 화폐 때문에 큰 탈이 나기는 마찬가지이다. (중국이 반면교사로 잘 공부해 두었다는 일본의 실패 사례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강 총재는 인터뷰에서 최근 위안화가 약간 약해졌는데 "미국의 tremendous한 압박 때문"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가 제공한 문답 기록을 봤더니, 영어로 진행한 이번 인터뷰에서 이 총재는 "tremendous"란 단어를 무려 13차례에 걸쳐 사용했다. 트럼프 대통령 못지 않게 과장법을 즐겨 쓰는데, 화폐발행 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는 바람직한 습관이라고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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