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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원유와 경제의 음(陰)과 양(陽)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04-12 오전 6:40:27 ]

  • 원인과 결과, 인과관계를 구분하고 파악해 내는 것이야말로 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모든 과학과 학문의 요체 역시 그것일 듯하며, 이는 세상만사의 난해함이 비롯되는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Editor's Letter를 비롯한 범인들은 그 관계를 혼동하기 일쑤이고, 어떤 이들은 그 혼동을 이용해 세상과 사람들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그 분석이 어려운 이유는 매우 입체적이다. 단지 무엇이 선(先)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뿐 아니라, 인과관계로 얽힌 듯한 양자는 단지 종속변수에 불과할 뿐 독립변수는 제3의 무엇인 경우가 드물지 않으며, 때로는 원인이 결과가 되고 종속변수가 독립변수로 변하는 사례도 흔히 발생하기도 한다.

    원유가격과 석유시장 및 경제·금융시장의 관계가 그 복잡함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글로벌모니터

    ⓒ글로벌모니터

    미국 셰일오일 혁명의 성지 퍼미언 원유 가격을 보여주는 WTI 미들랜드(Midland) 현물이 장중 한 때 56.09달러까지 떨어졌다. 전일비 8% 가까이 급락한 것이며, 지난 8일에 비해서는 10.5%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벤치마크 WTI에 대한 미들랜드의 디스카운트는 한 때 7.5달러로 대폭 커졌다. 전날에 비해 스프레드가 3.7달러 더 벌어진 것으로,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급격한 디스카운트 확대 양상을 보였다.

    즉, 미국 퍼미언 지역의 원유생산 활동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 WTI가 60달러선 위로 껑충 뛰어 오른 가운데 셰일 업체들이 이른바 동절기의 "프래킹 홀리데이"에서 벗어나는 양상이다.

    에너지 컨설턴트 <Rystad>의 아르템 아브라모프 셰일 리서치 헤드는 "퍼미언의 유정 완공속도가 현재 월간 500개 이내 수준으로 유가 상승이 아직 생산활동에 임팩트를 가하지는 않고 있으나, 60달러대가 유지될 경우 하반기에는 시추활동이 높아질 듯하다"고 말했다.

    WTI 미들랜드의 디스카운트는 지난해 초가을 한 때 20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원유운송 인프라가 셰일오일 생산속도를 못 따라간 탓이다. 그러나 이후 수송이 차츰 원활해지는 가운데 유가폭락에 따른 생산 조절까지 가세해 디스카운트가 대폭 축소, 한 동안은 프리미엄으로 돌아서기까지 했다.

    WTI 미들랜드의 디스카운트의 축소 추세는 그동안 국제 원유시장에 이중의 신호로 작용했다. 미들랜드 원유의 병목현상 해소에 따른 디스카운트 축소는 셰일오일의 증산을 유인해 유가를 끌어내리는 재료가 되었다. 반대로, 현지 생산 조절에 따른 미들랜드 디스카운트 해소는 공급우려를 완화하는 원유시장의 호재였다.

    양(陽)이 음(陰)을 잉태하고, 음이 양의 씨앗을 품듯이, 호재는 다시 악재로 변모하는 중이다.

    이날 WTI는 1.03달러, 1.6% 떨어진 63.58달러에 정규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1일 이후 한달여 만에 가장 큰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 원유재고가 2017년 이후 최대치로 불어났다는 전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발표 그리고,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글로벌 원유수요 전망을 낮출 수도 있다고 한 이날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월간 보고서가 원유시장 조정의 표면적 이유로 꼽혔다.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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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작년말 이후 가파르게 전개되어 온 원유가격 랠리의 공급측면 요인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의 감산을 가장 우선해서 꼽을 수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3월 중 OPEC의 원유생산은 일평균 3038만5000배럴로 지난 2015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생산량이 대폭 감소해 원유시장에 부양력을 제공했다. 이는 두 나라에 혹독한 제재를 가한 미국의 작품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로 인한 대대적인 공급 감소는 원유가격의 급반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미국 원유생산 활동의 재개를 이끌어 냈다. 에너지서비스업체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미국의 원유 시추공 수가 지난 주에는 15개 급증했다.

    ⓒ글로벌모니터

    이날 원유가격이 비교적 큰 폭의 하락 조정을 받은 데에는 달러화 강세가 한 몫 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고유가가 있었다.

    이날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월 중 미국의 생산자물가는 전월비 0.6% 뛰었다. 시장 예상치 0.3%를 크게 웃돌았다. 에너지 가격이 전월비 5.6% 급등하면서 물가 오름세를 주도했다. 둔화 추세를 이어왔던 전년동월비 상승률이 그래서 2%선 위로 다시 반등했다.

    생산자물가 서프라이즈 소식에 미국 장단기 국채 수익률과 달러가 일제히 오름세를 탔다. 미국 주간 신규 실업수당 신청건수 역시 여전히 강력한 고용시장을 보여줘 달러 랠리에 힘을 보탰다. 5개월여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던 WTI는 급히 후퇴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저 인플레이션은 둔화 양상을 지속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3월 중 에너지, 식품 및 유통서비스를 제외한 근원 생산자물가는 전월비 보합에 그쳤다. 앞서 2월에도 0.1%에 오른데 불과했는데, 3월에도 근원 물가는 기저효과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전년동월비 상승률은 2.0%로 떨어져 지난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 되었다.

    이날 생산자물가가 보여준 경제 구도는 전일 소비자물가와 더불어 스태그플레이션的(stagflationary)이다. 공급요인(인위적 감산)이 주도한 유가 급등세로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반면, 그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 속에서 근원 인플레이션은 가라앉는 모습이다.

    이는 이날 IEA의 원유시장 진단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IEA는 OPEC+의 감산으로 OECD 원유재고가 5년 평균치 아래로 감소했다고 밝히고, 올 3분기 원유재고는 매일 200만배럴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는 동시에 △미중 무역분쟁 △하드 브렉시트에 따른 유럽 수요 약화 가능성 △여전히 미미한 중동 원유수요 등을 지적하면서, 최근 유가의 오름세가 추가적인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모니터

    유가 급등세에 따른 경기위축 가능성을 논하다 보면 구세주(?)가 되어줄 만한 사람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만큼 적극적으로 고유가 문제를 지적하며 증산을 촉구해 온 국가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말의 트윗이 있다. 그는 "OPEC이 원유의 흐름을 늘리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시장은 취약하다. 유가는 너무 높아지고 있다. 감사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 트윗에도 불구하고 유가는 랠리를 지속했다. 60달러선 저항에 직면해 며칠 주춤하던 WTI는 트럼프 트윗 이후 오히려 상승추세를 되살렸다.

    사실 트럼프의 트윗은 OPEC에 대한 협박은 커녕, 경고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말미에 남긴 "Thank you!"라는 말은 마치 OPEC+에 대한 '감산 OK'를 뜻하는 암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앞서 지난 2월말의 트윗에서도 트럼프는 "OPEC, please relax and take it easy"라며 점잖게 달랬고, 지난해 12월과 11월의 관련 트윗에서는 "희망컨대(Hopefully)"라는 말로 시작하며 고유가에 대한 불만을 부드럽게 피력했다.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지난해 4월의 엄포와는 온도차이가 극명하다.

    이러한 모호한 태도는 트럼프가 세계 최대 원유소비국이자 세계 최대 산유국의 대통령인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원유생산이 다시 활기를 띠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모니터

    원유는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은 물론 정치와 안보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원유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원유는 너무 비싸서도 안 되지만 너무 싸서도 곤란하다. 지난 2014년 하반기 이후 펼쳐진 원유가격 폭락세를 통해 우리는 그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OPEC 홈페이지에 게재된 그들의 미션에도 이 점이 강조되어 있다. "소비자들에게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정기적으로 석유를 공급하는 한편 생산자들에게는 꾸준한 소득을 제공하고, 석유산업 투자자들에게는 공정한 자본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 원유시장의 안정을 확고히 하는" 것이 OPEC의 임무라고 그들은 밝히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인위적' 유가 부양은 소비자보다는 생산자와 투자자들을 위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그 한계이다. 특히 트럼프가 생각하는 상한선을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 매우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트럼프 트윗 문구의 온도를 재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편, OPEC+의 '노력'은 최근의 미국 경기침체 위험 논란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리세션은 멀었다"고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흔히들 미국 정크본드 수익률 프리미엄의 하향 안정세를 그 논거로 내세우는데, 그 증거능력에 사실은 중요한 결함이 있다. 미국 에너지 벤처들이 정크본드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한 뒤로 신용 스프레드는 채권시장의 경기전망 척도 기능을 많이 잃었다.

    즉, 작년말 이후 빠른 속도로 안정화하고 있는 미국 정크본드 리스크 프리미엄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OPEC+의 인위적 원유감산과 유가 부양 영향을 크게 받았다.

    만일 유가가 계속 뛰어 올라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본격적으로 훼손하기 시작한다면 정크본드 시장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 고유가가 당장은 정크본드를 지원하겠으나, 그 고유가가 잉태한 경기침체는 결국 유가와 정크본드에 타격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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