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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MMT와 파월의 밥그릇 싸움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03-16 오전 6:43:13 ]

  • ⓒ글로벌모니터

    지난 8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스탠포드대학 강연 질의응답에서 "인플레이션이 0%로 떨어지지 않도록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엄밀히 말하면, 고정소득이 있는 자)에게 이 말은 망발에 가깝다. 물가가 낮게 유지된 채 안 오르는 게 왜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가슴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머리로는 물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파월 의장은 0% 물가가 왜 무서운 일인지를 곧 이어서 설명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중앙은행은 경기하강에 대응할 능력이 정말로 줄고 또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물가상승률이 2%인 시기에 금리가 0%라면, 실질적으로는 그 돈을 빌린 사람이 부담하는 빚의 원금이 매년 2%씩 줄어들게 된다.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 2%인 것이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2%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0%로 내릴 경우 실질적인 통화부양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돈을 빌려 CPI(소비자물가지수)처럼 값이 오르는 곳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나 만일 인플레이션이 0%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리를 제로(0)로 인하해도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는다. 물가상승률이 0%로 굳어진 경제의 경우 중앙은행이 가동할 수 있는 금리인하의 최대 능력은 다른 정상적인 곳(인플레이션 2%)보다 200bp나 작다.

    그런데 이 역시 괜한 걱정일 수 있다. 왜 경기를 꼭 중앙은행만 부양해야만 하냐는 것이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낮추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린 것보다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수요증가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가.

    ⓒ글로벌모니터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정부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미 정부 빚이 너무 많이 늘어나 더 이상 지갑을 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도 돌이켜보면 일종의 헛발질이었다. 중앙은행에게 돈을 빌리면 되지 않는가. 즉, 정부가 돈을 찍어서 지출하면 되는데 왜 빚 걱정을 하는가.

    이게 바로 요즘 미국에서 핫이슈인 현대통화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의 커다란 전제다.

    그런데 지난달 말 의회보고에서 파월 의장은 이 MMT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견을 밝혔다. "(정부가) 자국 통화로 차입을 할 수 있는 나라의 경우 재정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틀렸다(just wrong)"고 말했다.

    지난 12일 유럽중앙은행(ECB)의 페터 프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정부가 중앙은행에게 부채를 조달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아이디어는 위험한 제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행위가 과거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경제 혼란으로 이어졌다.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말도 좀 모순적이다. 연준이든 ECB든, 금융위기 이후 지난 수년간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다고 앓는 소리를 해왔지 않은가. 가깝게는 지난 8일 파월 의장의 '제로 인플레이션 결사 반대' 발언까지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두려워서 정부에 돈을 대줄 수 없다?

    ⓒ글로벌모니터

    최근 파월 의장을 비롯해 중앙은행 사람들은 '너무 낮게 안정되어 문제인' 인플레이션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꼽아 왔다. 지난 1970년대말~1980년대초의 인플레이션 파이팅과 그에 이은 1990년대초의 인플레이션 타기팅 정책 등으로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고 안정될 것이란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확고히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Editor's Letter도 이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실제로 지난1990년 이후 약 30년간의 미국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다룬 필립스곡선을 그려 보면 위와 같은 그림이 나온다.

    위에서 보듯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베타는 -0.062로 교과서에서 말하는 음(negative) 상관관계가 형성된다. 실업률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베타의 절대값에서 보듯이 그 강도는 매우 약하다.

    지난 30년 동안의 미국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분포도는 Y축인 물가상승률의 2~2.5% 사이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 사이클과 실업률이 어떻든, 물가상승률은 거의 2%를 약간 넘는 수준에서 잘 고정되어 있었다(well anchored)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도에 세계화, 고령화, 인구성장 둔화 등의 구조적이고 장기추세적(secular) 요소들이 가세해 수평선의 레벨이 ("두렵게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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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지난 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그려보면 완전히 딴판의 구도가 펼쳐진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교과서적 음의 상관관계가 사라진다. 오히려 베타가 0.972에 달하는 강력한 양(positive)의 상관관계가 나오며 필립스곡선 이론을 폐기해 버린다(실업률이 1%p 높아지면, 인플레이션도 거의 1%p 상승한다는 의미). 주종이 바뀌어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업이 증가하는 듯한 모습의 이 경제 사례는 1980년대 이후로 중앙은행에 강력한 권력이 부여된 근거가 되었다.

    1970년대를 돌이켜 보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인플레이션의 분포가 폭넓게 흩어져 중심이 상대적으로 덜 뚜렷하다. 반면 실업률의 분포는 상대적으로 중심이 분명한 모습이다. 5.5~6% 사이에서 가장 빈도가 높아진다. (이 두 축의 특성이 결합해 베타가 커지게 되었다.)

    위와 같은 사례는 이른바 고전학파 2분법(classical dichotomy)과 화폐 중립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었다. 중앙은행이 정부를 도와 돈을 찍어내봐야 인플레이션만 널뛰기할 뿐 실업률은 결국 '자연(natural rate, U*)'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즉, 고용을 늘리려는 중앙은행의 화폐정책은 장기적으로 모두 헛일이며 인플레이션만 높아질 뿐이다는 결론이 당시에 도출되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너무 낮아져서 걱정인 오늘날의 중앙은행들을 보고 있지면 1970년대의 덕성(德性)이 발견되기도 한다.

    적어도 당시에는 낮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정책 무방비 상태'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는 실업률이 지금의 물가상승률처럼 많은 경우 특정 수준(5.5~6%) 사이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여기에서 요즘 미국 버전의 MMT와 맞닿는 대목이 등장한다.

    ⓒ글로벌모니터

    미국 MMT 주창자들은 연준에게 부여된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책무를 의회로 넘기자고 주장한다. 그래서 실업이 늘고 인플레이션이 떨어지는 경우 의회가 재정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영해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달성하도록 하며,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해 정부를 지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견 폴 크루그먼, 래리 서머스 등 재정의 적극적 경기 안정화 역할을 주창해 온 케인지언들의 주장과 일치한다. 수년전 경제 혹한기 당시 목소리를 높였던 '헬리콥터 머니'론과도 차이가 없다.

    다만 이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MMT는 일시적인 정책대응 패키지로서가 아닌 제도로서 '통화정책의 재정정책 종속'을 주장한다.

    요즘 미국에서 유행 중인 MMT 논의는 정치적 경향성 측면에서 영국 노동당 제레미 코빈 대표가 주창했던 '민중의 양적완화(People's QE)'와 닮았다. 공적 개발은행이 채권을 발행해 서민주택과 사회간접시설, 연구개발 등에 투자하고 중앙은행은 개발은행 채권을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통해 자금을 대준다는 구상이다. 다만 코빈의 QE는 정부부채 증가를 여전히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MMT와 차이가 있다.

    어쨌든 정치가 화폐발행 권한을 상시·제도적으로 갖는다는 점에서 MMT는 ECB 프라트 이사 류의 비판에 취약하다. MMT는 금융위기 이후의 QE 사례를 들면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QE는 유효수요 창출을 수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MMT의 QE와 다르다. 금융위기 당시의 QE는 팽창적 재정정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자산에 대한 수요만을 창출했기에 CPI를 부양하지는 않았다.

    MMT 주창자들은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국가부채 확대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데 이 역시 결함이 있다. 일본은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수십년 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며, 그 결과 엄청난 규모의 대외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경제라는 의미다. 엔화의 가치는 따라서 그 거대한 대외 순자산에 의해 보증된다. 그에 반해 미국과 영국은 막대한 대외 순채무를 짊어지고 있다. 언제나 항상 남의 돈을 빌려 쓰는 나라로서 외국인의 돌연한 변심에 치명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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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만일 의회가 재정정책에 브레이크 장치를 제도적으로 내재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중앙은행이 2%의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삼아 왔듯이, 의회가 4%의 실업률을 명시적으로 타기팅한다면 부양과 긴축 메커니즘이 자동적으로 형성된다.

    예를 들어 실업률이 5%를 넘어설 경우 의회는 의무적으로 팽창적 재정정책을 수행, 자신들의 법적 책무인 4% 실업률로 고용시장을 호전시켜야 한다. 반대로 실업률이 4%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 의회는 긴축적 재정정책을 펼침으로써 경제의 과열을 막아야 한다. 이 긴축 과정에서 정부는 불경기 때 축적한 부채를 자동, 의무적으로 상환하게 된다.

    중앙은행의 독립적 발권력은 영구불변의 천부권한이 아니다. 통화정책은 결정이 신속한 반면 파급시차가 크며 파급효과가 불분명하고 자산거품 등의 부작용이 커지는 중이다.

    반면 통화정책을 종속시키는 재정정책은 남용의 위험이 내재된 반면, 파급시차가 짧고 그효과가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팽창과 긴축의 자동·의무적 발동 시스템을 적용한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으며, 선출된 공무원이 자원배분을 직접 수행한다는 점에서도 원칙에 부합한다.

    다만 이 때 인플레이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겠다. 인플레이션 타기팅 레짐에서 고용 변동성이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가지를 묶으면 다른 게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높은 변동성, 미래 가격 전망에 미치는 높은 불확실성은 생산활동을 위축시켜 결국에는 고용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 경우 경제는 재정과 공공부문의 역할에 더욱 더 의존하게 되며, 생산성이 악화하고 활력이 사라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심지어는 지난 1970년대처럼 인플레이션이 실물경제 활동과 고용을 좌우하는 주객전도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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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인류는 아직 완벽한 화폐제도를 발견해 내지 못했으며, 여전히 계속 실험 중이다.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는 있지만, 언제나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거대 흐름의 뒤를 따라가는 뒷북일 수밖에 없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져야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은 불행히도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인류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보, 발전하기 때문이다. (앞선 진보를 반영한 새 실험은 새로운 진보를 이끌어 내 새 실험을 요구한다.)

    미국의 독립적, 독점적 발권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연방준비제도는 올 여름 대대적인 통화정책 레짐 점검에 돌입한다. 문제는, 그 논의의 프레임이 중앙은행에 의해 한정될 가능성이다. "아주 틀렸다"는 파월 의장이나, "위험한 제안"이란 프라트 이사의 태도는 올 여름 대토론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어쩌면 그 토론은 경찰 주도로 열리는 "부패 유착 방지 포럼"과 다를 바 없을 지도 모른다.

    *더블라인캐피털의 제프리 군드라크 창립자는 MMT를 두고 "완전히 넌센스다. 거대한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정당화하는데 쓰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역시 편협한 의견이다. 부자들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무방하고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넌센스인가? 사실 기존 통화정책 역시 재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중앙은행들은 또한 주식이나 회사채, MBS 등을 매입함으로써 의회에 부여된 자원 배분 권한을 무단 행사해왔다. 이에 반해 선출된 의회가 직접 자원배분에 나서는 것은 헌법적 기능이며 견제 장치가 상대적으로 더 견고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Editor's Letter가 MMT의 팬인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조금이라도 긍정할 만한 주장이 담긴 논의라면 편견없이 경청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Editor's Letter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류는 다시 한 번 좀 더 나은 화폐제도를 절실히 요구하는 임계점에 도달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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