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크게 텍스트작게 바로가기복사 프린트

[Issue in Focus]아베의 통상백서와 야성의 거세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오상용 기자 [기사입력 2018-07-10 오후 7:25:04 ]

  • 1. 통상백서

    10일 일본의 아베 내각이 내놓은 통상백서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으로 가득찼다. 중국의 발전단계에 따라 글로벌 과잉의 그림자가 반도체 등 하이테크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담겨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324쪽짜리 백서에서 중국관련 서술이 전체의 30%인 98페이지에 달한다. 대충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규모 보조금과 정부기금을 앞세운 중국의 국가주도형 경제성장은 글로벌 과잉생산의 진원지다. 과도한 저리대출은 이들의 생산능력을 증폭시켰고, 정부 보조금은 기업의 적자를 보존하며 수익성이 낮은 기업(좀비기업)을 연명시켰다."

    "철강에 이어 반도체 부문 역시 과잉생산 우려가 자라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핵심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15조엔(9000억위안) 규모의 국가주도 펀드를 조성해 육성하고 있다. 이는 2001년~2005년 *철강산업 육성기와 맞닿아 있다."

    *백서에 따르면 중국의 철강과잉은 크게 3단계를 밟아왔다. ▲2001~2005년 국유은행이 철강기업에 융자를 대폭 늘리며 생산능력 증대를 뒷받침했다. ▲2006~2015년 철강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정부가 꺼내든 것은 보조금 확대다. ▲2016년 이후 주요국의 비난이 거세지자, 중국 당국은 공급부문 개혁을 꺼내들며 생산능력 감축을 진행중이다.

    "국제교역에서 중국의 위상 역시 높아졌다. 2017년 중국을 최대 수입국으로 하는 국가(전체 수입액중 중국산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57개국이다. 전세계 30%에 해당한다. 2000년에는 북한만이 중국을 최대 수입국으로 했다. 이는 2위인 미국(28개국)의 2배다. 일본의 경우 한 때(2000년)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의 최대 수입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산으로 대체됐다.">

    90년대말까지 관치금융과 선단식 경영의 메카였고, 버블 붕괴 이후로는 거대한 좀비 양성소였으며, 최근에는 일본은행(BOJ)이 `관제(관에 의한 시장지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대놓고 누구를 비난한다는 게 우습지만, 백서에 기술된 내용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중국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다. 중국내 국뽕(?) 학자들은 심심찮게 "지금 세계가 비난하는 중국의 과잉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중국이 세계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이라 주장한다 - "중국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위를 구했다고 사탕발림하던 이들이, 중국의 과잉에 의지해 된서리를 피했던 이들이, 이제는 중국을 악의 온상이라 비난한다. 이런 배은망덕~."

    2. 블랙홀

    중국이 의욕적으로 내다팔려는 물건과 중국이 앞다퉈 매입하려는 물건의 트렌드를 살피는 일은 중요해졌다. 주변 기업들 입장에선 경쟁의 한 복판으로 몰리느냐, 신시장이 열리느냐를 좌우한다.

    속된 말로 중국이 팔면 내리고 중국이 사면 오르는 세상이다. 중국이 전 세계를 향해 제품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해당 제품군의 국제 시세는 급락한다. 수요-공급의 법칙에서 중국발 공급 폭증에 해당한다. 동시에 중국이 사들이기 시작한 제품은 그것이 원자재든, 커피든, 왕새우든, 일제히 급등한다.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세계의 공장이자 대규모 내수시장이기도 한 중국의 현재 위치가 이러하다.

    최근 3년 중국은 생산수단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다. 단순히 기계에 칩을 심는 과정에서부터 설비의 완전 자동화에 이르기까지 하이테크 투자가 활발하다. 지난 세월 중국은 고정자산 투자를 집중하며 고성장을 유지해 왔다. 직전의 산업화 단계까지 중후장대 섹터에 집중됐던 고정자산 투자가 이젠 첨단 기술 영역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산업 발전 단계로 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자, 중국의 정치·경제시스템 하에서는 합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초기 투자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드는 하이테크 산업은 일견 `돈 먹는 하마`다. 그러나 수확체증의 법칙(Increasing Returns of Scale) 즉 규모의 경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영역이다. 투입 생산요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확률 또한 높다. 일당 지배 하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은 여기에 유리하다. *당이 이정표를 세우면 값싼 정책자금이 대규모로 투하되는 것은 물론이다.

    *올초 당국은 베이징 근교에 대규모 AI(인공지능) 연구 단지 조성에 들어갔다. 중국판 실리콘 밸리다. 여기에서 다뤄질 분야는 기존 속도를 뛰어넘는 빅데이터 연산능력 개발과 대륙을 품을 클라우딩 기술 확보, 5G 모바일망 구축 등이다. `2030년 AI 최강국` 모토는 2050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단계인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실현과 맞물린다.

    이렇게 대규모 하이테크 투자 붐(Boom)을 거친 뒤 중국은 세계를 상대로 다시 새로운 상품을 쏟아낼 것이다. 그 무렵 그들이 `의욕적으로` 팔려는 제품이 지금과 같은 철강이나 알루미늄합금 같은 종류일까. 아베의 통상백서가 적고 있듯, 그렇게 누군가는 또 다시 경쟁의 한복판으로 내몰려야 한다.

    3. 애니멀 스피릿의 거세

    아베의 통상백서는 미국 백악관의 고민과 전략을 답습한 *맞춤형에 가깝다. 백악관이 중국의 `제조강국 2025 플랜`을 정조준한 것은 중국의 저런 성장모델이 머지 않아 경쟁우위 영역을 질식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바탕한다. 그래서 더 이상 기어오르지 못하게 사다리를 열심히 걷어차야 한다.

    *니혼게이자이 역시 "(이번 백서에서) 보호주의에 올인한 미국에 대한 기술은 30페이지에 그쳤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어 미국의 자동차 관세 위협까지 가해지는 상황인데도 그러하다. 아베 내각내에선 미국을 함부로 자극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경제가 보이고 있는 모습은 어떤가. 단편적 현상을 일반화할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몇가지 사례를 꼽아보자.

    미국의 리서치 회사 트림탭스 인베스트먼트(TrimTabs)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올 1분기중 발표한 자사주 매입 총액은 2421억달러에 달한다.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다. 2월 이후 속도를 붙인 자사주 매입은 지난 5월에는 1736억달러를 기록해 월간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트림탭스는 "트럼프의 세감면에 크게 힘입었다"고 분석했다. 세감면이 기업들의 설비투자를 늘려 공급능력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던 바람은 (현재로선) 빗나갔다 - "예상대로"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 상장기업의 자사주매입 역시 최근 수년 동안에는 연간 4조~5조엔을 오간다. 이는 2010년대 초반 자사주 매입 규모의 3~4배에 달한다. 절대 규모는 미국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증가 속도는 제법 빠르다.

    시장 유통주식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는 기업들의 주주 환원책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나름의 순기능이 어딘가엔 있을 게다. 다만 좀 다른 각도에서 이런 경영진의 방어전략을 보자면 이는 안일함이자 방만함이다.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의 우노 다이스케 수석 스트래티지스트는 "선진국 기업들이 내부자금을 설비투자와 인적개발 투자 대신 자사주매입에 돌리는 동안, 중국은 선택과 집중으로 하이테크 분야를 육성하고 있다"면서 "훗날 그 결과가 어떨지.."라고 우려한다.

    흔히들 불황과 호황을 오가는 경기 사이클은 자본주의 약점이자, 강점이라 말한다. 그 사이클 속에서 낡은 것은 파괴되고 새로운 게 건설되며, 야성도 길러진다. 기존의 부(富)가 소멸한 자리에 새로운 부(富)가 자라날 공간도 생겨난다. 그렇게 인생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부(富)의 간극이 좁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리먼쇼크의 충격에서 벗어난 후로도 주요국은 확장적 재정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을 끊지 못했다. 증시가 오르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BOJ의 ETF 매입과 호황의 정점에서 등장한 트럼프의 재정정책은 그 극단적 예다.

    이는 사이클의 실질적 소멸에 종사한다. 또한 위 맥락에 따를 경우 사이클의 소멸은 `부(富)의 이동`이 아닌, 기존 `부(富)의 질서`를 강화(자산가치에 의한 부의 양극화)하는 데 복무한다. 이런 환경에선 파괴도 새로운 기회도 찾기 어렵다. 그러니 짐승은 좌절하며, 짐승을 품고 살아야할 이유도 약해진다.

    정책 보호막 속에서는 시장 가격(주가와 회사채 금리)이 경영진을 자극하는 메커니즘 역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들의 안일함을 욕할 필요는 없다. 좋고 나쁜 것은 상대적이며 세상이 그 길을 택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어딘가에 있을 게다. 여하튼 안일함의 끝에서 맞게될 외부충격은 적잖이 아플테지만, 긴 시간축 하에선 그 나름의 순기능을 가질지도 모른다.

    이는 중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중국의 국가주도형 성장모델은 분명 글로벌 불균형 심화를 확대 재생산해 온 주범이다. 내부적으로 이를 해소하지 않은 채 모순(부채문제, 비효율적 투자과잉, 부동산 버블)을 심화시켜온 결과, 트럼프라는 외부충격을 맞이하게 됐다.

    그 충격이 제대로 순기능을 발휘하면 그간 지체됐던 중국의 개혁이 가속도를 낼 수 있다. 전면개혁심화가 시진핑의 본심이라면 중국은 외부충격에 의지해 많은 것을 바꿔놔야 한다. 이와관련 차이나 익스프레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 이 경우라면 중국 지도부는 (그들이 장기 비전에 충실하다면) 단기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 외부의 적(미국)을 이용해 내부 불만을 다스리면서 금융개혁과 개방심화의 동력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하지 않고 기존 방어벽 안에서 움츠려들면 결국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리스크 시나리오에 관하여

댓글 로그인 0/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