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크게 텍스트작게 바로가기복사 프린트

[On The Edge]자가발전의 무한동력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이공순 기자 [기사입력 2018-05-16 오전 6:50:24 ]

  • 언론에는 재미있는 특징들이 있는데, 그것은 자가발전과 그 과정에서의 무한 동력이라는 점이다. 언론의 자가발전은 대부분 '오독'이나 혹은 주관적인 평가에서 발생한다.

    흔히 뉴스를 'fact'라고 생각하고 있는 언론의 정보 생산 과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fact'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오해도 한몫하고 있다.

    fact는 고정되고 확정된 '어떤 것'이 아니다. 실증주의자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하지만, 그런 fact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궁금하면,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참조하자.

    fact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왈가왈부를 여기서 반복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언론의 '특성'에 따른 fact의 재생산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의 fact 생산과 재생산은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는 동네에서 개짖는 현상에 비유할 수 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 한마리가 짖는다. 그러면 옆집 개가 따라 짖고, 결국은 온 동네 개가 다 짖는다.

    따라 짖는 개들은 자신들이 왜 짖는지 모른다. 다만 옆집 개들이 짖고 있기 때문에 짖는다.

    최초의 원인(즉 첫번째 개가 짖은 이유)가 소멸되어도, 혹은 그것이 첫번째 개의 오해였거나 재채기였을 뿐일지라도, 동네 개들의 합창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온 동네 개들이 다 짖으면 그 때는 동네에 '사건'이 된다.

    15일자 CNBC 인터넷판 커버 스토리는 '북한이 남한과의 회담을 취소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며, 군사 훈련을 둘러싸고 미국과의 정상회담도 취소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North Korea reportedly cancels meeting with South Korea, threatens to ditch summit with US over military drills)는 어마어마한 제목을 달고 있다. 오, 놀라운 뉴스다.

    CNBC가 인용하고 있는 소식통(sources)은 AP 통신이다. 그래서 AP 통신 기사를 찾아가면, 한국의 연합 통신 뉴스를 원출처로 하고 있다.

    그러면 연합통신 보도는 어떻게 나와있을까?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연합통신 뉴스를 분석해보자(* 포탈 Daum에 실린 한국 시간 16일 새벽 3시 47분발 연합통신 뉴스를 기초로).

    (1) 북한은 남북 고위급 회담 무산의 원인을 철저하게 '남한'에 돌리고 있다. 북한은 미국 때문에 회담이 무산되었다고 전혀 주장하지 않는다.

    ..."북남고위급회담이 중단되게 되고 첫걸음을 뗀 북남관계에 난관과 장애가 조성된 것은 전적으로 제정신이 없이 놀아대는 남조선당국에 그 책임이 있다"면서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 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기서 언급된 '제정신이 없이 놀아대는 남조선 당국'의 행동은 미국과의 맥스선더 공군 훈련이다. 그런데 이 훈련은 연통 기사에 따르면,

    "맥스선더 훈련은 이달 11∼25일 진행되는 한미 공군의 연례적 연합훈련으로 F-22 스텔스 전투기 8대, B-52 장거리폭격기를 비롯한 F-15K 전투기 등 100여 대의 양국 공군 전력이 참가한다. F-22 8대가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의 기사에서 날짜를 보라; "5월 11-25일 진행되는". 즉 이미 진행 중인 훈련이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 훈련은 북한에게 '알려진' 것이었다. 북한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 새삼스럽게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즉, 이 군사 훈련 자체가 과연 북한의 남북 고위급 회담 무기 연기의 원인이었을까 진지하게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데 왜 미국에게는 전혀 책임을 묻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연통에 보도된 조선중앙통신의 기사 내용으로만 추정한다면, 북한의 미국에 대한 스탠스는 남한의 무책임한 행동에 같이 놀아나면 미국에게도 책임이 생긴다.

    즉 북미 정상회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해서, 미국이 한국을 말려달라는 요구가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안그러면? 북미 정상회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만일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된다면, 이는 트럼프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타격이다. 왜냐하면, 이미 발표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교 전략으로 말한다면,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사건은 비밀리에 전격적으로(닉슨의 중국 방문 처럼) 해치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걸어다니는 옥외광고판이라 그럴 리가 없고, 어차피 글로벌 국제 관계가 옛날처럼 비밀리에 해치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는 하다.

    여기서 난처해진 것은 미국이다. 그러면 미국은 군사 훈련을 중단해야 하나?

    (2) 불가능하다. 한반도 이슈가 지난 60 여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것은, 남북한 미중일러 내부에 모두 평화 체제 구축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 강력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평화는 기존에 대립 상태 하에서 이득을 보았던 세력들의 양보를 의미하며, 누구도 양보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한반도는 계속 교착 상태로 남았다(대표적인 사례가 오바마 정권의 전략적 인내다).

    트럼프가 한반도에서의 군사 활동을 축소할 수 있으려면 군부를 완전히 억누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미국 정치 지형에서 그건 불가능하다. 트럼프는 그럴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첫 대외 반응 중의 하나는 "미국은 계속 군사력을 증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3) 뿐만 아니라, 한미 공군 군사훈련(맥스 선더)에 대한 반응은 이미 군사적으로 나왔다.

    중국 전투기는 지난 주에 한국 항공식별 구역을 고의 침범했고, 지난 월요일에는 러시아 전폭기가 알래스카 영공을 순회 비행했다.

    이는 맥스 선더 훈련에 미 전략 폭격기가 동원된데 따른 당연한 주변국의 군사적 반응이다.

    다른 말로 해서, 중국이나 러시아는 맥스 선더 훈련이 한반도용이 아니라, 대중국 대러시아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어쨌든 군사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는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즉 이 훈련과 관련된 '반응'은 일단락된 상태다.

    (4) 그러면 북한의 난데없는 고위급 회담 취소는 무엇인가? 연통기사에서도 슬쩍 언급되어 있다.

    정치적인 문제다.

    이와 함께 통신은 "특히 남조선 당국은 우리와 함께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하고서도 그에 배치되는 온당치 못한 행위에 매달리고 있으며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놓고 있다"고 거론했다.

    연통은 이 대목을 지난 화요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 공사와 관련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중앙통신의 기사로 보면, 이같은 해석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해석은 기사 말미에 슬쩍 덧붙여져 있어서 잘 안 읽힌다. 특히 한국적 풍토로 보면, 여기까지 찬찬히 생각해 가면서 읽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어쨌든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보면, 북한은 남한내의 반북 활동에 대해 문재인 정권이 조치를 취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서 미국이 남한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를 억제토록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안하면? 남한에게도, 그리고 미국에게도 부담이 된다고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즉, 북한은 북한 체제를 전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아예 첫걸음부터 확실하게 받아놓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일 것이다.

    (5)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고위급 군사 회담 무기 연기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심사숙고' 운운은 남한 국내용, 즉 정치적 사안에 관한 것이다.

    만일 북한이 군사 훈련에 반응한 것이라면, 이번 맥스 선더 훈련에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전략 전술 훈련이 포함되었으며, 이를 지난 하루 이틀 사이에 확인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재로서는 정확한 훈련 내용은 알 수 없다.

    (6) 그런데 언론은 자가발전된다. CNN은 "백악관, 북한 "남북고위급회담 중지" 발표에 긴급대책회의"라는 속보를 내보냈고, 이는 다시 한국 언론에서 인용되었다.

    또 미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 발사에 대해, "美, 北전역 타격가능 ICBM 시험발사"라는 내용으로 보도된다. 미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사정 거리에 북한이 포함되지만, 이것이 북한을 겨냥한 것인지는 순수히 언론의 창작에 지나지 않는다(북한이 사정거리에 들어가지 않는 미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찾는게 더 힘들다).

    여기에 미 하원 군사위원회의 주한미군 최소 규모 유지 결의안이나, 미 국무부 대북한 인권 보고서가 언론에 등장하고, 일단 언론이 파고들기 시작하면,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들이 모두 '뉴스'가 되어 세상을 뒤흔든다.

    언론이 이렇게 보도하기 시작하면, 온세상이 소란해지고 이 사건은 정말 큰 일이 된다. 물론 하루 기사거리에 목숨을 거는 기자들로서는 큰 일이다.

    그런데 그 '큰 일'의 본질이 어디에 있느냐는 별개 문제다. 만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연기한다면 하면, 그건 비핵화 논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분석한 것처럼, 남한 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면, 이건 '큰 일'이 아니다.

    적어도 북미 관계에 있어서는 큰 일이 아니며, 또한 남북한 간에 타협이 가능한 사안이다(필자는 이 소란이 며칠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조만간 타협할 것이다).

    일파를 만파로 만드는 것은 언론의 관점에서는 아주 쉽다(마찬가지로 만파를 무파로 만드는 것도 쉽다). 그것도 그다지 '의도치 않고' 얼마든지 일파만파를 행할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이 '외신'을 통한 것이라면, 외신은 한국 뉴스를 인용하고, 한국 뉴스는 다시 그 외신을 인용하면서 점점 더 커진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증폭'에는 자체의 고유한 수명이 있어서, 그 최대치까지 자라난다. 오늘은 온 동네 개들이 다 짖을 것이다.



댓글 로그인 0/1000